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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진 Mar 20. 2018

'오빠들'에게 행운을 보내며!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무척이나 좋아하던 아이돌 가수가 있었다. 엠넷에서 그 아이돌 그룹의 프로그램을 몇 번 본 것이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프로그램을 다운 받아 보는 것일 뿐이었는데 어느덧 그들이 나오는 음악 방송을 챙겨 보고 팬카페에도 가입해서 그들의 사진을 보는 데 시간을 쏟았다. 결국 친한 친구들도 그 그룹에 푹 빠져 모였다 하면 그들의 얘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결국에는 소극적인 ‘덕질’에서 적극적인 ‘덕질’을 행하기에 이르렀다. 첫 시작은 팬 사인회에 참석하는 일이었다. 용산의 ‘신나라레코드’에서 그들의 첫 팬 사인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친구와 함께 아침 일찍부터 레코드점에 가서 앨범을 사고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몇 시간을 기다렸다. ‘덕질’의 기본은 기다림이라는 것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잠깐 나타나는 그들을 보기 위해 오매불망 기다리는 팬들의 숙명이랄까. 


아직도 그들을 처음 본 순간이 또렷이 기억난다. TV로 볼 때는 아주 잘생기지는 않다고 생각했던 멤버 실물을 보고 화들짝 놀랐던 것도, 그리고 유독 좋아하는 그 멤버 앞에서 ‘아무 말 대잔치’를 늘어놓았던 것도. 사인회에서 시작된 오프라인 덕질은 각종 음악방송 방청으로 이어졌다. 가끔 운이 좋으면 음악방송이 끝나고 짧은 만남이 있기도 했고, 한두 마디 말을 건네는 친구들도 있었다. 어마어마한 인기를 자랑하는 대형 아이돌이 아니라 ‘중소 아이돌’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고등학교 입학하자마자 밤 10시까지 강제 야자를 해야 했지만, 기어코 몇 번은 야자를 ‘째고’ 그들을 보러 갔다. 학교에 가지 않는 주말이면 소풍 가듯 설레는 마음으로 방송국으로 향했고, 입장할 때까지 길바닥에 앉아 한참을 기다리면서도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웃었던 기억밖에 없다.


이 ‘오프라인 덕질’은 오래 가지 못했다. 난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고 아차 하다가는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약간은 시들해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그들의 곡이 몇 차례 더 나왔고 나는 꼬박꼬박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야자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 앨범을 끝으로 그들이 함께 무대에 서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소위 말하는 것처럼 ‘빵’ 뜨지는 못했지만, 내 고등학교 한 시절을 그들과 함께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들은 특별한 존재다. 여전히 어디에선가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오빠들’에게 행운을 보내며!



* 오빠들이 얼마전에 슈가맨에 나왔다. 물론 다섯 명 완전체는 아니었지만, 네 명이 한 무대에 서는 걸 보니 내 한 시절이 지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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