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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진 Apr 08. 2018

광화문의 노래


평일 아침, 지하철역에서 내려 사무실로 가는 출근길. 작년 6개월 동안 매일 같이 들었던 노래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비틀즈도 아니고, 검정치마도 아니고, 토이도 아니고, 존 메이어도 아니다. 출근길을 책임지는 노래는 바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진짜다. 나뿐만이 아니라 종로구청 옆을 지나는 모든 회사원들이 들었던 그 노래.


지금은 사라졌지만, 1년 전만 하더라도 매일 아침 종로구청 옆에는 전국철거민협의회(전철연)의 차량이 있었다. 차량에 달린 스피커에서는 웅장하면서도 궐기 넘치는 노래가 흐른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돈의문 상가 세입자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그들의 목소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통해 전해졌다. 예의 그 노래가 들리면 귀에 꽂은 이어폰의 음량을 모두 줄이고 귀를 기울였다. 시간만 있다면 서서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싶지만, 이렇게나마 미안한 마음을 애써 숨기며. 주변을 지나다니는 사람 모두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기사를 찾아보니 2014년에도 돈의문 세입자에 관련된 기사가 난 적이 있다. 1976년 발표된, 소설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한 이야기다. 그게 참 서글프다.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으면 밖에서 이런저런 소리가 들려온다. 매주 수요일에는 사무실 빌딩 맞은편에 있는 소녀상에서 수요 집회가 열린다. 추운 겨울에 천막을 치고 그 안에서 먹고 자며 소녀상을 지키던 이들은 이제 덜덜 돌아가는 선풍기 하나에 의지해 더위와 싸울 것이다. 작년 1월에는 광화문 KT 본사 앞에서 노조의 시위가 있었고, 건설노조 집회가 대규모로 열렸다. 그리고 전철연 차량이 사라진 자리에는 서울지방국세청의 누군가를 규탄하는 방송이 몇 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짧은 텍스트로만 봤던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내 일상 가까이에서 펼쳐진다. 내가 얼마나 좁게만 살았는지 여실히 느끼는 요즘이다.


난 이들이 빚어내는 외침이 그 어떤 노래보다도 아름답다고 느낀다. 재작년 촛불집회 때 우리들이 만들어냈던 빛의 물결과 외쳤던 구호들, 그리고 광주에서 모두가 제창했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억한다. 세상을 바꾸었던 소리들. 절대 잊고 싶지 않은 ‘우리들의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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