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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진 Apr 08. 2018

야구의 시간


야구를 즐겨 보지는 않지만, 주변에 늘 야구를 즐겨 보는 사람들이 있다. 야구 시즌에는 하루의 마무리를 맥주와 함께 야구로 마무리하는 사람들, 자기 삶의 패턴이 일 년 치 야구 시즌에 맞춰져 있는 사람들, 자기가 응원하는 팀을 욕하면서도 애증의 감정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 우리 아빠도 그런 야구 팬 중 한 명이다. 아빠는 약속이 있거나 일이 없는 이상, 야구를 보며 저녁 시간을 보내신다. 저녁을 먹으며 보는 TV 채널은 항상 야구 채널에 맞춰져 있다. 사실 난 회사를 다니던 몇 년 전쯤에야, 아빠가 이렇게 야구를 본다는 걸 처음 알았다. 중고등학교 때는 항상 학원, 학교에 가느라 늦게 집에 들어오는지라 저녁 시간을 가족과 보낸 적이 없고, 대학교 때도 항상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늦게 들어왔으므로. 아빠의 평일 저녁 야구 시간을 뒤늦게서야 알게 된 것이다. 아빠처럼 야구에 열광하는 야구팬들을 보며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야구의 매력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렇게 사람들을 열광하게 하는 것일까.


하루키는 본인의 수필집에서 공공연하게 자신이 소설을 쓰게 된 이유를 밝힌다. 물론 야구와 관련된 이야기다. 그는 메이지진구 구장에서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경기를 보다가 2루타를 친 순간 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이걸 읽으면서 참 하루키다운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음, 모름지기 소설가는 시작부터 범상치 않군"이라는 생각도, "일부러 만들어낸 에피소드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물론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도 야구장에서 타자가 2루타를 쳐내는 모습이 보고 싶어졌다. 얼마나 그 광경이 특별했으면,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을 했을까 싶어서.


처음 야구를 보러 간 때는 몇 년 전 여름이었다. 아빠와 응원하는 엘지와 동생이 응원하는 기아가 맞붙는 잠실 경기였다. 모처럼 네 가족이 주말에 시간을 내서 야구장에 갔다. 기분 좋게 치킨을 먹고 생맥주를 마시며 드디어 야구 경기를 보는구나 설렘으로 가득했다. 드디어 경기가 시작하고, 20분쯤 지났을까. 어마무시한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곧 경기가 잠시 중시되었다. 그러다 결국 우천으로 경기가 취소되었다. 내 첫 야구 직관의 꿈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렇게 야구에 대한 흥미를 발견할 만한 계기도 없이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중 야구를 좋아하는 남자친구 덕분에 함께 야구장에 가게 되었다. 비록 메이지진구구장은 아니었지만, 잠실야구장 2층 좌석에서 야구 경기를 보며 그곳의 분위기를 느꼈다. 한 팀을 응원하고 때로는 애정 섞인 욕을 내뱉기도 하고. 그 모습이 좋아 보였다. 이런 재미에 야구를 보는구나 싶기도 하고. 야쿠르트팀의 2루타가 어땠길래 하루키는 그 순간을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까, 하는 의구심은 여전히 갖고 있지만 말이다.


여전히 난 야구보다는 축구에 열광하는 쪽이지만, 야구를 인생에 빗대는 표현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홈에서 출발해 다시 홈으로 돌아오기까지의 무수한 과정, 그리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문장이 가장 잘 어울리는 스포츠가 야구라는 것도. 야구 경기를 보며 새삼 그 의미를 깨달아가고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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