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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진 Apr 15. 2018

'언니들'과 미역국

최은영 작가의 단편 '선택'을 읽었다. 지금껏 읽어온 이 작가의 단편엔 뭐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 그래서 늘 읽으면서 목이 메어오는 듯했고, 결국엔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이번에 읽은 '선택' 역시 읽으면서 코끝이 찡해졌고, 결국은 눈물이 한가득 터졌다. '선택'은 KTX 해고 승무원의 기나긴 싸움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12년 동안 힘든 싸움을 해온 '언니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난 그날 이전의 나로 되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아. 그 일을 겪은 많은 동료들이 우리를 떠났고, 떠나고 있어. 네가 나보고 그냥 떠나버리라고 말했을 때 내가 너에게 했던 말 기억해? 사람은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말.

아니야, 사람은 그렇게 살아도 돼. 떠나도 돼. 피해도 돼.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면서 폭언을 듣고 조롱을 당하고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입지 않아도 돼. 너에게 그 말을 했을 때 나는 우리 투쟁이 이렇게 아플 줄은 몰랐어. 몸은 고되고 피곤할지는 몰라도 정신만은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아니었어. 나는 겨우겨우 견뎌내고 있는 것 같아.

- 최은영, <파인다이닝>, '선택'


KTX 해고 승무원의 이야기를 읽으며, 몇 년 전 쌍용자동차와 한진중공업의 해고자들을, GM 노동자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작년 광운대역에서 일어났던 철도 노동자 조영량 씨의 죽음이 떠올랐다. 작년 5월 따뜻한 봄, 광운대역에서 철도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매일같이 내가 출근하기 위해 발도장을 찍는 곳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 같은 공간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고는 인력 부족으로 과중한 일을 처리하다 발생했다고 한다. 구의역 사고가 벌어진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여전히 현장은 바뀌지 않았던 것이다.


광운대역 앞에 있는 빈 공간에 조그만 분향소가 차려졌다. 사람들로 가득찬 출근길 버스를 타며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눈을 감고 명복을 빌었다. 그리고 '다들 오늘도 무사하기를' 안녕을 빌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매번 지나고 나서야 조금 더 신경쓰지 못했다고 후회하는 나쁜 습관은 오늘도 나를 괴롭힌다.


최은영 작가가 남긴 작가의 말처럼, '언니들'의 투쟁은 우리에게 힘을 준다. 아름답고 강한 '언니들', 그리고 따뜻한 미역국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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