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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진 Apr 20. 2018

결혼을 할 거라면


막연하게 26살쯤에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유를 나조차도 명쾌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일찍 결혼하면 좋겠다 싶었다. 우리 가족이 그러지 못했기에, 좀 더 정답고 살가운 말을 건네는, 다정한 가정을 꾸렸으면.


그래서인지 꽤나 구체적인 프러포즈 로망을 갖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결혼식 며칠 전에 형식적으로 하는 프러포즈는 아니었으면 했다. 장소는 드럼통에 연탄을 놓고 불을 피우는 곱창집이나 고깃집.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왕십리 주먹고깃집 같은 분위기. 깜짝 이벤트, 촛불 이런 걸 못 견뎌 하는 스타일이어서 최대한 고백은 담백하게 해줬으면 싶었다. 그냥 진심 어린 말 한마디, 그거 하나면 충분하다. 그리고 정말 뜬금없지만, 분위기와 전혀 맞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international love songs'가 흘러나왔으면. (쓰고 보니까 진짜 엉망진창이긴 하다. 그래도 뭐, 꿈은 자유니까!)


그러다 며칠 전,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주는 사람에게 프러포즈를 받았다. 난생처음 받아보는 내 몸뚱이만 한 꽃다발과 반지, 그리고 다정한 말을 속삭인 편지. 처음에는 마냥 좋아서 바보 같이 헤헤거렸는데, 편지를 다시금 곱씹고, 이 순간을 위해 열심히 알아보고 준비했을 오빠를 생각하니 벅차오르고 눈물이 고인다.


사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아직 준비된 것도, 결정된 것도 하나 없고, 앞으로 수많은 결정을 해야 하지만. 지금 이 마음을 오래오래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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