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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진 May 25. 2018

나는 내 삶에서 만난 사람들의 총체다 - (2)


지금이야 내 나름의 가치관과 소신이 뚜렷한 편이지만, 갓 대학에 입학했을 때만 하더라도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였다. 누가 하라는 대로,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였고, 또 나 스스로도 그게 편했다. 이 모든 것이 바뀌게 된 계기는 한 아이를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모르는 것투성이였던 내게 그 친구는 든든하면서도 신기한 존재였다. 음악, 영화를 비롯해 정치까지, 하물며 서브컬처까지 모조리 섭렵한 듯한 그 아이는 세상의 모든 걸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내가 더 놀랐던 점은 그 모든 일에 있어서 자기 주관과 취향이 뚜렷했던 것이다. 그 어떤 사안에 대해서도 자신의 입장과 생각을 분명하고 논리적으로 말하던 아이. 아마 그 친구에게 매력을 느꼈던 건 온전히 이 부분 때문이었을 거다. 내가 전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영화와 문학은 원래부터 좋아했으니까 논외로 치더라도, 음악을 이렇게 좋아하게 된 것은 그 친구의 영향이 8할은 차지할 거다. 그 아이가 좋아하는 걸 나도 공유하고 싶어서, 마치 시험공부 하듯이 음악을 찾아 듣고 공부를 했다. 마치 원래 그 노래를 알았던 것마냥 아는 척도 해가면서 말이다. 겹치는 부분이 거의 없었던 음악적 취향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교집합을 이루어갔다. 지금 생각해도 이건 참 고마운 부분이다. (음악 취향이라는 게 참 신기한 게, 가까운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이 더해지면서 몸집을 불려 나간다. "내 삶에서 만난 사람들의 총체다"라는 말은 여기에도 꼭 들어맞는 셈이다.)


'좌파'가 뭔지 '우파'가 뭔지 어렴풋이 알고만 있는 수준이었던 내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그 아이 덕분이다. 정치에 관심이 있기 전과 후는 정말 달랐다. 내가 아는 것만큼 세상이 넓어졌다. 이 각박한 세상을 제대로 살아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었다. 내 주변을 둘러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떤 자들의 논리에 의해 어그러지는지, 알아야만 하니까.


그때 그 친구한테 이런 마음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너를 만나, 너 덕분에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그 아이는 그 말이 참 쑥스럽고 부끄럽다고 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그때 느꼈던 마음은 변함이 없다. 사실 그 친구의 논리가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었다.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그 친구의 논리를 반박하고 공격하는 횟수가 늘어갔지만, 그것에서 오는 실망감도 나름 즐거웠다고, 이제서야 내뱉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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