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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진 May 25. 2018

나는 내 삶에서 만난 사람들의 총체다 - (1)


2016년 초였던가. 어느 기자의 죽음 소식에 동료 기자가 쓴 추도사를 읽었다. 그녀의 명함 뒷면에는 "나는 내 삶에서 만난 사람들의 총체다."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고 했다. 그 문장이 한동안 머릿속에서 사라질 줄 몰랐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를 이루고 있는, 내가 만난 사람들에 대하여.


지금보다 한층 지랄 맞았던 성격과 가치관을 통째로 바꿔버린 사람이 몇 명 있는데, 그중 하나는 김연수 작가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대학교 신입생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아득) 대학을 처음 갔을 때,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일단 낯선 사람들을 무더기로 만난다는 것에 낯섦과 두려움을 느꼈다. 이건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랑 같은 막막함이었다. 사람들과 친해지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던 나였지만, 술자리 몇 번에 금세 친해지는 사람들을 따라갈 수 없었던 거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스트레스지만, 대학에서 배우는 수업 내용과 방식도 내겐 벅찼다. 그래도 나름 중고등학교 때는 공부 잘한단 소리도 들었는데, 막상 대학에 와보니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어찌나 작고 미미한지. 내 존재 자체가 하찮아지는, 그런 절망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어영부영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다가, 우연히 김연수 작가의 소설을 읽게 되었다. 지금도 생각날 때면 종종 꺼내 읽곤 하는 <세계의 끝 여자친구>. 소설집에 실린 글을 읽으면서도 내내 치유 받는 기분이었는데, 마지막 작가의 말이 나를 뒤흔들어놓았다.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모른다, 라고 해야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이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의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 김연수, <세계의 끝 여자친구> 「작가의 말」 중에서


비로소 그때야 내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매끄럽지 않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은 채 그저 혼자서 끙끙대며, 남들이 날 알아주지 않는다며 투덜대던 내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도. 


너무 당연한 말 같지만, 지금 내가 그나마 인간처럼 살아가고 있는 건 온전히 작가님의 문장 덕분일 테다. 내 인생이'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게끔 해준. 실제로 작가님을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 어떤 사람보다도 내게 커다란 의미를 준 소중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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