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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진 Jul 10. 2018

기억을 부르는 노래


즐겨 들었던 노래를 들으면 어느 한 시점이 머릿속에 그대로 펼쳐지는 경우가 있다. 이른바 기억 소환 노래. 어떻게 이런 것까지 기억할 수 있을까 싶은 사소한 것도 문득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노래와 에피소드가 있다.


가장 먼저 꺼낼 노래는 얼마 전에 들었던 김성재의 '말하자면'. 난 듀스 세대는 아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나온 그룹이었기에. 김성재며, 이현도의 노래도 아주 나중에서야 처음 듣게 되었는데, 이 노래는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들었다. 내가 나온 중학교는 축제만 되면 공연을 광운대학교의 소강당을 빌려 그곳에서 진행하고는 했다. 정신없이 이어지는 선배들의 공연을 보는데,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내 기억으로는 몇몇 선배와 학교 선생님들이 함께 춘 무대였던 것 같다. 처음 들었을 때 충격이란. 그때 들은 4분 남짓한 노래가 그날 하루종일 입안에서 맴돌았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이 노래를 들으면 그 축제 공연의 분위기와 무대 리허설 공연을 보며 친구와 나눴던 사사로운 대화까지도 모조리 기억이 난다. 심지어 그때 앞에서 춤을 춘 선배의 이름과 얼굴까지도!


내가 좋아하는 산울림의 노래를 들으면 큰아빠가 생각난다. 김창완과 이미지가 비슷하기도 하고, 어렸을 때 명절에 다 같이 노래방에 간 적이 있었는데, 이 노래를 부르던 큰아빠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니 벌써'라는 가사와 멜로디가 재밌어서 어렸을 때 한동안 따라 불렀던 기억도. 그러다가 큰 아빠와 아빠가 기분 좋게 취해서 노래방에서 '골목길'을 부르던 기억으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우스꽝스러웠던 로봇 춤을 춰가며. 그 기억이 이상하리만치 강렬하게 남아 있다.


한 번 노래에 꽂히면 한 달 내내 똑같은 노래를 반복해서 듣기도 한다. 회사 사무실이 강남 쪽이었을 때, 출퇴근 시간이 너무 길어서 책이 필수였다. 그때 한창 '안나카레니나'를 읽을 때였는데, 그 시기에 쌈디의 '해부'를 자주 듣곤 했다. 소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노래지만, 이상하게 이 노래를 들으면서 '안나카레니나'를 읽으면 그 어느 때보다도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안나와 브론스킨이 떠오른다. 물론, 이런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안나카레니나'는 2권에서 중도 포기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난 러시아 소설과 안 맞는 듯)


장기하와 얼굴들의 '마냥 걷는다'도 요맘때쯤 많이 들었던 노래다. 그날도 1시간 30분 넘는 퇴근길 기차에 몸을 싣고 서 있었다. 그날은 이상하게도 손에 들고 있던 책도 읽히지 않아서, 노래를 들으며 멍을 때렸다. 앞쪽에 어떤 한 커플이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들을 보니 갑자기 몇 년 전 잊고 있었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학교에 다닐 때 술을 진탕 먹고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와 막차를 겨우 탔다. 인사불성이라고 밖에 표현되지 않을 정도로 취했던 나를 내버려 두고 그 아이는 내 옆에 앉아 있던 다른 남자에게 다다다음역에서 잘 내리는지 좀 봐달라며 지하철에서 먼저 홀라당 내렸다. 그 당시에는 필름이 끊겨서 다음날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그로부터 2년이 지나서야 어제 일인 것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던 거다.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다. 몇 년 동안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상처가 갑자기 예고도 없이 일어나는 순간, 다리가 후들거려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을. '마냥 걷는다'는 참 좋아하는 노래지만, 그때 내가 지하철에서 받은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져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


물론 행복했던 기억이 떠오르는 노래도 있다. 작년 가을에 질릴 만큼 들었던 장재인의 '아마추어'를 들으면 오빠와 함께 떠났던 강릉 여행이 펼쳐진다. (물론 오빠는 이 노래를 들으면 힘들었던 강원도 운전이 떠오른다고 했지만. ^ㅠ^)


다행히도 나쁘고 슬픈 기억이 있는 노래보다는 행복하고 그리운 기억을 품고 있는 노래가 더 많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낀다. 늘, 지금처럼만, 더도 말고 딱 지금만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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