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일을 앞두고 있다 보니, 요즘엔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졌다. 특히 요즘엔 문득문득 우리 가족에 대해 생각한다. 지금까지 한 번도 떨어져 지낸 적 없었던 가족. 말 그대로 탈도 많고 우여곡절 많았던 우리 가족.
몇 달 전, 프러포즈를 받고 나서 다음날 아빠에게 프러포즈를 받았다는 얘기를 꺼냈다. 엄마에게는 그간 조금의 언질을 주기도 했지만, 아빠에겐 전혀 그런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원래 아빠와 시시콜콜 털어놓는 부녀 관계가 아니니까. 그래도 말이지. 엄청난 축하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난 아빠가 무슨 대답이라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아빠는 아예 내 말을 무시했다. 몇 번이고 "아빠, 나 남자친구한테 프러포즈 받았다니까"라고 얘기해도 아빠의 눈은 TV만을 향했다. 그런 아빠를 보며 나도, 엄마도 당황. 한참을 말이 없던 아빠는 얼굴도 한 번 안 봤는데, 뭔 결혼이냐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럴 줄은 몰랐다, 정말. 그래도, 나한텐 큰 의미가 있는 일인데, 이렇게 화난 표정으로 대꾸할 줄은 말이다. 그날 방에 들어가서 아빠의 반응에 서운해서 한참을 울었다. 축하받아야 할 날에 얼굴이 엉망이 될 정도로 펑펑 울다니. 우리 가족은 뭐 하나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다.
엄마한테 전해 들은 말로는, 아빠가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화가 났단다. 뭐 아빠식의 표현을 내 식으로 해석하자면, 서운한 감정일 거다. 결혼하겠다는 말을 들으니 그동안 못 해줬던 것도 생각나고, 그래도 조금은 나중의 일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빠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일찍 듣게 되어서 놀랐다고. 그 말을 듣고 나니 아빠의 반응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물론 난 나중에 내 딸이 결혼한다고 했을 때 이런 반응은 보이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굳건히 했다.
사실 새로 꾸릴 신혼집이 우리 집과 차로 15분 거리여서 조금 민망하긴 하지만, 그래도 난생처음으로 집을 떠나 새로운 살림을 차리게 된다. 엄마, 아빠는 살림할 줄도 하나도 모르는 나를 보며 걱정을 한다. 어제 집에 가니 엄마가 "너 주려고 전동 다지기 기계를 샀다"며 택배 상자를 보여주었다. 며칠 전에 엄마도 샀는데 너무 좋다면서 하나 더 샀다고. 나중에 신혼집에 챙겨가라고. 그냥 재료를 적당히 썰어서 전동 다지기 기계에 넣고 버튼을 누르면 10초 만에 그럴싸하게 다져지는 마법의 기계! 아빠는 옆에서 "쟤가 뭐 살림을 하겠어? 저걸 쓰긴 하겠어?"라며 코웃음을 쳤지만, 그래도 떠나는 나를 위해 이것저것 신경 쓰는 엄마 아빠가 내심 고맙다.
떨어져 살면 이 관계도 조금은 더 애틋해지겠지.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요즘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