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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진 Jul 18. 2018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


볼 때마다 웃음이 터져 나오는 표지의 하루키 책,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소확행'이라는 엄청난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하루키는 말한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그리고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 쓸 때의 기분이 바로 행복이라고.


나의 소확행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왠지 모르게 의욕도 없고, 내 몸뚱이 하나 제대로 움직일 만한 체력도 없는 요즘이지만, 내게도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는 것들이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파마다. 엄청난 직모의 소유자인지라, 아침마다 매번 세팅롤로 머리를 말곤 했다. 어차피 화장할 동안에 머리에 꽂아두면 되는 거라 큰 상관은 없었는데, 엄청난 폭염 때문에 아침에 열 나는 롤을 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였다. 게다가 비가 올라치면 어김없이 말았던 머리가 다 풀리는 거라.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미용실에 가서 머리 끝부분만 살짝 펌을 했다. 누가 보면 평소 내 머리와 똑같지만, 더이상 아침마다 롤을 말지 않아도 되고, 고데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대충 드라이기로 말리면 끝! 이것만큼 소확행이 있을쏘냐!


지금 같은 여름에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행복도 있다. 창문을 활짝 열어 차가운 바람이 들어오는 밤, 두툼한 이불을 목까지 덮고 있을 때. 몸은 따뜻한데, 공기는 차가울 때. 그 묘한 공기를 느끼고 있으면, 이상하리만치 행복하단 생각이 든다. 요즘엔 요리를 하면서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예를 들어 재료를 손에 대충 집히는 대로 넣고 뚝딱 만들었는데, 너무나 맛있을 때! "나 요리 천재 아냐?"라는 근자감을 느끼며 예쁜 그릇에 플레이팅할 때!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간혹 정밀한 계량이 필요한 요리를 할 때는 저울에 재료를 계량하기도 한다. 그럴 때 한 번에 집은 재료를 저울에 딱 올렸는데, 무게가 정확할 때. 괜히 뿌듯해져서 입꼬리가 씰룩거린다.


출퇴근길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버스를 타는 건 싫어하지만, 자정이 다 되어갈 때쯤 버스를 타는 것을 좋아한다. 맨 뒷좌석에 앉아 버스의 덜컹거림을 온몸으로 느끼며 좋아하는 노래를 들을 때, 이 세상에 나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뒷자리에서 지친 사람들의 뒷모습을 볼 때면 모두들 수고했다고 등을 토닥여주고 싶다. 너도, 나도, 오늘 고생 많았다 말해주고 싶어진다.


그리고 이건 정말 소소하긴 한데, 찰떡같은 이모티콘을 주고 받을 때 소확행을 느낀다. 이모티콘을 받는 사람과 똑 닮은 이모티콘을, 적절한 상황에 날리는 일. 상대방이 ㅋㅋㅋㅋㅋㅋㅋㅋ를 사정없이 보낼 때면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이상한 생각마저 든다!


커다란 행복이 자주 찾아오지는 않지만, 눈 씻고 찾아보면 내게 활력을 주는 소소한 기쁨과 행복이 있다.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 잊지 말고 기억해둬야지. 힘들 때면 언제든 꺼낼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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