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고 계시죠. 여기는 몹시 무덥습니다. 하루하루 버티기 힘들 만큼 날씨가 영 도와주지를 않네요. 그곳은 어떤가요, 아마 여기보다는 훨씬 좋겠죠? 요즘 노을 지는 하늘이 참 예쁘던걸요. 그 하늘을 볼 때면, 그리고 여름이면 문득문득 당신이 떠오릅니다.
사실 우리가 가깝게 지낸 기간을 따지자면 몇 개월 남짓이죠. 몇 년 전 늦가을에 당신에게 기타를 배우기 시작해서, 그 이듬해 여름이 찾아오기 전에 발길이 드물어졌으니 6개월 정도. 그런데 저는 왜 이렇게 오래 알고 지낸 듯한 느낌일까요. 신기한 일이죠. '츤데레의 정석'이었던 당신의 말투에 적응해가면서, 전 기타를 배웠습니다. 서로 틱틱댔지만, 일주일에 한 시간 기타 배우는 시간이 행복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열심히 연습해갔는데, "이거 봐. 연습 안 했네" 하는 당신의 말에 서운할 때도 있었지만, 서로의 손가락을 보며 기타를 치는 그 분위기와 공기를 사랑했습니다. 모든 게 다르고 충돌했던 우리가 처음으로 똑같은 생각을 내보인 적도 있었죠. 오아시스를 더 좋아한다는 다른 쌤의 말에 "아, 라디오헤드지! 뭘 모르네"라며 똑같이 대답하던 그 날을 기억하나요. 처음으로 의견이 맞았다면서 좋아했었죠. 당신 덕분에 처치스의 노래를 처음 알게 되었고, 스트로크곡만 치던 제가 처음으로 연주곡을 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제게 박보영이 될 수 있다며 늑대소년 노래를 알려주곤 했었죠. 그거 아나요. 그 노래를 연주하고 있으면 그때 당신이 했던 말이 모조리 기억난다는 걸요.
발걸음이 뜸해졌던 그해 여름, 당신이 속한 밴드의 앨범이 나왔지요. 너무나 당연하게도 앨범을 사서 들었습니다. 그 여름, 정말 그 노래를 많이 들었어요. 시원한 느낌이 드는 전주가 자꾸만 듣고 싶어졌거든요. 왜 요즘 안 오냐는 당신의 문자에, 요즘 바쁜 일이 생겨서 좀 여유로워지면 다시 가겠다 답하며 앨범 구매 인증샷을 보냈습니다. 그 문자에 "음악 들을 줄 아네"라며 당신 특유의 말투로 보낸 답장을 기억합니다. 정말 당신다운 문자였어요.
마지막 앨범이 나온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당신의 부고가 전해졌습니다. 회사에서 업무 중에 그 소식을 전해 듣고 믿을 수 없어 한동안 모니터를 쳐다본 날이 기억납니다. 마지막 날에 그 소식을 알게 된 저는 결국 당신의 마지막 길을 보지 못하고, 죄송스러운 부조금만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어찌 그리 황망하게 세상을 떠났는지도 묻지 못했습니다. 그저 당신의 앨범을 하염없이 반복해 들었을 뿐입니다.
어느덧 1년이 지나, 다시 여름입니다. 포털에 당신의 이름을 검색하면, 여전히 당신은 시크한 표정입니다. 사망일이 채 적히지 않고 출생일만이 적힌 프로필을 보며, 이게 진짜였으면 싶습니다. 다 같은 마음이겠지요. 오늘은 오랜만에 당신에게 배운 기타 연주곡을 쳐보려 합니다. 한참 기억을 되살려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겠지만, 여름이니까요. 제 나름의 방식대로 당신을 추억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