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혜진 Jul 30. 2018

참을 수 없는 가식의 무거움


상황에 따라 조금씩 변하는 내 모습에 나조차도 놀라는 때가 여전히 많다. 예전에는 친한 친구들과의 모습 따로, 적당히 친한 사람들과의 모습 따로, 남자친구와의 모습 따로, 회사에서의 모습 따로, 집에서의 모습 따로…. 트랜스포머 못지않은 10단 변신을 잘만 해대고 다녔던 나다. 요즘에는 그 갭이 많이 줄어들었다지만, 여전히 어색하고 낯선 환경에서는 본 모습을 살포시 접어두고 만다.


어렸을 때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이 '가식적이다'라는 말이었다. 꼭 내가 듣는 것이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다른 사람한테 가식적이라는 말을 하면 그게 심한 욕을 듣는 것처럼 불쾌했다. 사전에 '가식'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이렇게 나온다.


가식

[명사] 1. 말이나 행동 따위를 거짓으로 꾸밈. 2. 임시로 장식함.


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난 정말 가식적인 애가 맞다. 상황에 따라서 내 모습을 훽훽 바꾸고, 때론 내 본연의 모습과 전혀 다른 거짓 행동이 나오기도 하니까. 예전에는 분명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늘 다른 사람들에게 착하고 좋은 모습만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었다. 이게 처음에는 통한다. 적당히 거리감이 있을 때는 말이다. 난 실제로 착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본 모습이 들통난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만난 남자친구들은 내가 착해서 좋아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속았다는 걸 알았을 거다. 미안. 착한 애가 아니라서.) 그렇다고 해서 내 본모습을 철저히 숨길 수는 없지 않은가. 난 원래 이렇게 생겨먹은 애인 걸. 다만 친하지 않을 때 그 모습을 굳이 꺼내 보여주지 않았을 뿐.


요즘엔 애써 착한 모습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그냥 짜증 나면 짜증 내고, 불만이 있으면 표현한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로 내가 얻은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처음이 어렵지, 그 무겁고 버거운 가식을 벗겨내면 세상 살기가 참 쉽다. 다른 사람들한테도, 나한테도.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여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