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필요로 하는 건 그저 작은 불빛 하나.
연애를 다시 하기까지 11년의 공백이 있었다. 그 긴 시간 중에 누군가를 마음에 담았던 적도 있었지만 마음에 담았었다, 그뿐이었다. 겨우 두 달가량 얼굴을 맞대고 지냈던 뿐이던 사람을 3년 간 그리워하기도 하고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의 사이로 누군가를 만나기도 했다.
그렇게 살아오다 보니 어느덧 30대 중반. 이쯤의 연애란 선뜻 결정하기 쉬운 일은 아니다. 마음만으로 하려 해도 세상은 상대방은 쉬이 나를 그리 두지 않으니까. 흔히 말하는 결혼 적령기도 지나버렸지만 비혼으로 살고자 했기에 그렇게 아쉽진 않았다. 다만 지방인의 수도권 살이는 가끔씩 치미는 외로움이 있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들어와 불 꺼진 집에 들어오면 적막하고 정체된 공기가 감돌고 날씨가 추워지는 계절이면 그 서늘한 온도에 아주 가끔은 마음이 먹먹해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억지로 다녀왔습니다. 하고 혼자 말하며 집의 불을 켜고 옷을 갈아입은 뒤 곧장 주방에 서게 된다. 적막한 나의 작은 공간을 무엇이로든 메우고 싶었던 걸지도.
집에 거의 늘 구비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고형 카레와 여러 종류의 파스타 면이다. 양파만 있다면 아무것도 넣지 않아도 카레가 되기 때문에 냉장고가 비어있을 때도 한 끼 이상의 밥다운 밥을 먹을 수 있다. 밥 마저 없다면 파스타 면을 삶아 카레를 얹어 먹으면 될 일이다.
육류를 대부분 소비한 건지 보이지 않아 달걀을 네 개 정도 꺼내 소금을 뿌린 물에 삶는다. 평소엔 반숙을 좋아하지만 완숙에 가까워야 껍질을 까기 쉽다. 찬 물일 때 조심스레 한번 씻은 달걀을 넣고 강불에 6분 정도 팔팔 끓인 후 불을 끄고 여열로 달걀을 삶는다.
그동안 필수 재료인 양파를 채 썰고 당근이나 브로콜리, 감자, 양배추 등 식감이 다소 단단한 채소라면 뭐든 좋다. 깨끗이 씻고 적당히 먹고 싶은 크기로 잘라 준비해 두고 기름을 두른 웍에 양파를 볶는다. 양파가 살짝 숨이 죽고 반투명해지며 노란빛이 돌기 시작하면 된다. 감자를 뺀 나머지 채소를 더 넣고 볶는다. 오래 볶을 필요는 없어서 어느 정도 볶아졌다 싶으면 물을 붓고 강불로 시작해 끓기 시작하면 중불로 뭉근히 끓인다.
그동안 익은 달걀을 찬물에 담가서 깐 다음 물기를 털고 뚜껑이 달린 팬에 기름을 둘러 굴리며 굽는다. 뚜껑은 없어도 괜찮지만 사방으로 튀는 기름을 다시 치우는 수고를 뚜껑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
원하는 만큼 푹 우러난 채소 스튜에 고형 카레를 넣어 고르게 저은 후 잘 구워진 계란을 넣어 한번 더 저어주고 잠시 끓이면 고기를 넣지 않아도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구운 달걀카레가 된다.
서른여섯의 11월, 어떤 남자를 만났다. 살아온 삶의 궤적은 사실 다를 수밖에 없었지만 짧은 대화를 거듭할수록 닮은 부분이 느껴졌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문득 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지 대화를 나누었을 뿐 아무런 사이도 아니던 그와 나였지만 하루종일 일을 하다 지쳐 돌아온 그의 적막한 현관에 등을 하나 달아두고 싶었다. 살다 보면 유난히 힘에 겨운 날, 현관에 서서 터져 나온 울음으로 집을 가득 채우던 그런 날들이 그에게도 있었을 것만 같아서.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저마다의 영화나 드라마 같은 장면이 스쳐 지나가고 우리는 기어코 연인이 되었다. 나는 그에게 USB로 충전해서 쓸 수 있는 작은 센서등을 선물했다. 각자의 퇴근길을 밝혀주는 작은 등.
어젯밤에 미리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놓은 카레를 기대하며 총총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도어록을 지문으로 해제하고 집에 들어서자 나를 반기는 것은 더 이상 센서등이 아니다. 께느른한 모양새로 드러누운 고양이 두 마리와 다가와서 나를 감싸 안아주는 나의 해묵은 연인.
어서 와. / 다녀왔어.
가방과 짐을 내려놓고 옷을 갈아입고 주방에 선다. 최고의 카레는 역시 하루 전날에 만든 카레라는 말이 있다. 가스 불을 올려 적당히 열기를 머금을 카레를 듬뿍 떠서 고슬고슬한 밥 위에 올리고 엄마가 담아서 보내 준 익은 김치를 함께 꺼낸다.
카레의 점도는 그때그때 다르지만 어떤 형태라도 각자의 매력이 있다. 채 썰어 볶은 후 오래 끓은 양파의 실체감은 희미하지만 부드러운 단맛이 강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양파와 더불어 채를 썬 당근은 또 다른 새침한 단맛을 내고 제 철 감자는 파근파근하게 입 안에서 부서진다. 밥알과 조화롭게 엉긴 카레 소스는 온기 가득한 반질거림을 더해 입 안을 가득 채운다.
이쯤 지났을 때 아껴 둔 달걀을 한입 베어문다. 노릇하게 지진 흰자에서는 어딘가 익숙하게 달걀 프라이의 맛이 느껴지고 여러 번의 조리 과정 끝에 살짝 오버쿠킹 된 노른자는 푸르스름한 빛이 감돌지만 목 막히는 고소함이 있다. 그리고 김치 한 조각이 주는 시원하고 짜릿한 기분전환. 이렇게 순환하다 보면 금방 배가 불러온다.
한 때, 서울에 상경해 혼자 사는 사람들끼리 한 식탁이나 다찌에 둘러앉아 저녁밥을 먹는 소셜 다이닝 가게를 차려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그와의 저녁시간은 가장 작은 단위의 연구실이 된다.
모두의 저녁시간이 안온하길 바라며, 당신의 현관을 밝혀 줄 등을 하나 켜두는 마음으로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