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과 감정과 지각과 경험은 내가 아니다.
오늘도 고요히 지나가는 하루입니다. 순간순간 내 마음속이 소란할 때도 있지만, 그것에 집착하지 않고 흘려보내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나에게서 느끼는 실망감도 남에게서 느끼는 서운함도 그저 흘려보냅니다. 무언가를 하기 싫은 마음도 하지 않아 밀려오는 불안감도 그저 가만히 지켜봅니다. 그러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면 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그것에 집중합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니 마음이 얼마나 평화로운지 모릅니다. 집착하지 않으니 가볍고,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않으니 머리가 맑아지면서 오히려 능률이 오르는 듯도 합니다.
Be yourself.
오늘 오랜만에 전화를 한 친구가 해준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판단은 그들의 문제이고, 그 기준에 얽매여 자신을 바꾸려고 노력하지 말라는 의미였어요. 그저 나인 것이 더 매력적이라는 말도 해줬습니다. 내가 내가 되는 것보다 쉬운 일이 어디 있을까요? 그저 숨 쉬고 밥 먹고 존재하면 되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나답게 나로 존재한다는 게 말이죠. 그 이유를 에크하르트 톨레는 명확히 알고 있는 듯합니다.
나는 확실한 사실을 계속 간과한다. 그것은 가장 깊은 곳에 존재하는 '나의 실체'는 내 삶에서 일어나는 일, 즉 삶의 내용물과는 상관이 없다는 사실이다. ...(중략)... 어리든 늙었든, 건강하든 병들었든, 성공했든 실패했든, 나의 실체는 그리고 지금이라는 공간은 나의 가장 깊은 곳에 변함없이 존재한다. 내용물을 나의 실체로 착각하는 바람에 나는 나의 실체와 지금을 삶의 내용물을 통해서만 아주 희미하게 간접적으로 느낀다. 다시 말해서 나의 자아상은 환경과 사고의 흐름과 세상의 많은 일들로 인해 모호해지고, 지금 이 순간은 시간에 의해 모호해진다. - 고요함의 지혜 | 에크하르트 톨레 / 제4장 지금 이 순간
저는 잘 모르겠는데 말입니다. '어떻게 그 둘을 분리해 내지? 내가 체험하는 모든 것들, '내 삶의 내용물'을 나로부터 분리해 내면 도대체 뭐가 남는 걸까? 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거지?' 하는 질문들이 계속 이어집니다. 그때 문득 든 '왜 꼭 뭐가 남아야 하지? 왜 꼭 나인 것을 찾아야 하지? 내가 아닌 것으로부터 떨어져 나오기만 하면 되는 것을.'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집착을 걷어내고 '보는 자'로서 '순수의식'으로 존재하기마 만 하면 됩니다. 무엇이 되려고 애쓰느라 나를 잃어버리고 혼란, 분노, 우울, 폭력, 대립의 소용돌이 속에 존재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의 생각과 감정과 지각과 경험은 내가 아니다.
내 삶의 내용물은 내가 아니다.
나는 생명이다.
나는 만물이 생성되는 공간이다.
나는 순수의식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이다.
오늘도 내일도 이 말을 되뇌며 보는 자로 집착 없이 존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