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내버려 두어라.
20대 열정적 사랑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6년간의 장거리 연애 뒤에 별안간 헤어졌어요. 그리고 일 년이 채 되기 전에 다시 만났다가 또다시 크게 다투고 홀로 남겨졌습니다.
멍하니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는데요. 창문으로 눈치 없이 환한 햇살이 들어오며 하얀 커튼이 바람에 날려 펄럭거렸어요. 그 장면이 아름답지만 묘하게도 슬퍼져서 3층 높이의 방에서 그 창문으로 그냥 뛰어내리고 싶었습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내가 너무나도 싫었지만 나는 나를 버리고 어디도 갈 수가 없더라고요. 죽으면 나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저는 켜져 있던 TV 속 시트콤을 보며 웃고 있었습니다. 실없는 농담을 되뇌며 깔깔거리고 있었어요. 죽음을 생각했던 순간이 무색해져 버렸습니다. 더 이상 떠난 사람이나 나 자신을 탓하지 않았어요. 문제가 없는데 잘잘못을 따질 필요가 없어진 거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수용할 때 깊은 차원에 도달할 수 있다. 그곳에서 마음은 더 이상 사고가 판가름하는 '선'과 '악'에 좌우되지 않는다. 삶의 '현재성'에 '예'라고 할 때,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깊은 여유로움과 평화를 느낄 수 있다. - 고요함의 지혜 | 에크하르트 톨레 / 제6장 수용과 순응
오늘 6장 '수용과 순응'을 읽으며 제 찬란했던 20대의 사랑과 이별을 떠올려봤습니다. 나는 지옥에 있었는데 햇살과 바람, TV와 시트콤이라는 평범한 일상을 마주한 순간 나는 내가 만든 지옥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별'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누군가의 '선'과 '악'을 따지지 않음으로써 나만의 여유로움과 평화를 찾았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참 마음에 드는 문구를 공유하며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에게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행복하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의 '그러함(如如)'을 그대로 두어라. 그것으로 충분하다.(고요함의 지혜 | 에크하르트 톨레 / 제6장 수용과 순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