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권태도 스승이 될 수 있다.
요즘은 자꾸 피곤합니다. 환절기 날씨 탓도 해보고, 어제 늦게까지 휴대폰을 본 나 자신도 탓해 보지만, 그러면 뭐 하겠어요? 탓을 할 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야지요. 하지만 막상 움직여지지가 않습니다. 피곤하기 때문이죠. 더 정확하게는 권태롭습니다. 필사도 글쓰기도 일도 모두 미룬 채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겨우 <고요함의 지혜> 책을 펼쳤습니다. 필사든 글쓰기든 아니면 그냥 책을 읽다 잠들던 어느 하나라도 하자는 마음에요. 그런데 거기서 나를 발견했습니다.
생각은 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라고 속삭이며 더 많이 갖고자 욕심을 부린다. 생각이 내가 되어버릴 때 나는 자꾸만 권태로워진다. 권태롭다는 것은 허기진 마음이 더 많은 자극과 채울 것을 원한다는 것이며 또한 그 허기가 아직 가시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권태로울 때 잡지를 집어 들거나 전화를 하거나 TV채널을 돌리거나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쇼핑을 하면서 마음의 허기를 채운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의 허기를 몸으로 전이시켜 음식을 더 많이 먹어서 일시적으로 만족을 얻는다. - 고요함의 지혜 | 에크하르트 톨레 / 제2장 생각하는 마음을 넘어서
해야 하는 일은 하지 않고, 뭔가를 계속 찾아 돌아다니는 제 모습을요. 뭔가 해야 하는데, 계속 부족한 것 같고, 한 시간 두 시간 권태로운 채로 시간을 보냅니다. 점점 더 하고자 하는 의욕은 사라지고, 느려집니다. 실제로 누워만 있으면 근육 손실도 일어나고, 만성질환에 걸릴 확률은 높아진다고 하는 연구결과도 있더라고요. 이것도 사실 하릴없이 인터넷 릴스만 스크롤하다가 발견한 연구결과라는 게 참 아이러니하네요.
맑은 마음이 권태로운 기분에 가 닿으면 한 순간에 그 주변이 트이며 고요함이 들어선다. 처음에는 아주 작았던 틈새 공간이 점점 더 커진다. 그와 동시에 권태로운 느낌이 조금씩 약해지며 그리 대수로운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권태도 스승이 될 수 있다. 나의 본모습이 무엇이고 나의 본모습이 아닌 것은 무엇인지 가르쳐줄 수 있으니까 말이다. - 고요함의 지혜 | 에크하르트 톨레 / 제2장 생각하는 마음을 넘어서
지금 이 순간, 아주 살짝 권태 사이로 틈새 공간이 생긴 듯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늦었어요. 잠시 후 잠들고 나면 저는 내일의 권태에 잡아 먹힐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긴 시간을 권태와 보내고 나서야 조금의 틈 사이로 맑은 마음이 들어올 거 같아요. 이 정도 되면 권태가 나의 본모습이 아닌 게 맞을까요? 하루 24시간에서 자는 시간 빼고 12~14시간 정도는 권태롭게 보내는 거 같은데 말이죠. 나의 게으름에 에크하르트 톨레를 가져다 붙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하지만 나 자신을 탓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잘 압니다. 권태로부터 배워야죠. 긴 시간을 권태롭게 보낸 것을 자책하기보다, 내게 남은 하루 서너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방법을 고민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