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겠단 마음과 안될 거란 생각은 동시에 드는 걸까?
혹시 뉴턴의 제3법칙, '작용 반작용의 법칙'을 아시나요? 한 물체가 다른 물체에 힘을 작용하면 다른 물체도 힘을 작용한 물체에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인 힘을 작용한다는 운동의 법칙인데요.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이러한 원리로 우리는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고, 수영을 할 때 팔로 물을 뒤로 밀어낸 힘만큼 앞으로 나아가고, 벽을 밀면 그 힘만큼 뒤로 밀리고, 점프할 때 발을 힘껏 구른 만큼 높이 올라갈 수 있다고 합니다.
왜, 갑자기, 물리학 법칙 운운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요? 최근 불현듯 이 법칙이 과학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결정을 내리려고 할 때마다, 매번 이와 아주 비슷한 현상들이 마음속에서 일어나곤 합니다.
'오, 이거 재미있겠는 걸? 배워볼까?' 하면
'아니야, 힘들 거야.' 하는 생각이 따라오고,
'미라클 모닝, 한 번 도전해보는 거야!' 하면
'새벽 6시? 하루 종일 피곤하겠지?.'싶고,
'커피 한 잔 하자고 말해볼까?' 하다가도
'아냐, 부담스러워하면 어떡해.' 걱정하고.
왜 한 생각이 떠오르면, 그 반대되는 생각이 동시에 드는 걸까요? 두 가지 생각이 서로 같은 강도로 팽팽하게 대립되어 옴짝 달짝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답답함은 물론이고, 이럴까 저럴까 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다 보니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집니다. 실제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까지 합니다. 결국엔 생각만으로 지쳐서 제풀에 꺾여버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쯤 되면 '이거 병이 아닐까?', '다른 사람들은 안 그런 것 같은데, 왜 나만 이러는 거야?' 하는 스스로를 더 괴롭히는 생각들이 더해집니다. 결국엔 모든 도전이나 새로운 기회에 대해 두려움이 앞서고, 시작도 하기 전에 '해볼까?'라는 생각을 차단하게 됩니다. 때론 '~하면 어떡해'라는 생각이 들기 전에 서둘러 앞뒤 재지 않고 뛰어들었다가 후회하기도 하죠.
이러나저러나 힘들기만 한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 마음속 '작용 반작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고민 끝에 아래 3가지로 정리해봤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가장 큰 기대를 가지고, 엄격한 기준으로 평가하며, 때론 잔인할 정도로 가혹한 말을 하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일 때가 많습니다. 똑같은 실수나 실패에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되지.", "사람이 어떻게 모든 걸 다 잘하니?"와 같은 위로의 말들을 건네지만, 자신에게는 "이번이 아니면 안 돼!", "왜 난 이것도 하나 제대로 못하지?"라고 자책하기 일쑤입니다.
그렇다면, 해볼까 vs. 하지 말자 라는 생각의 대립을 내 문제가 아닌 다른 사람의 것으로 간주하고 들여다보면 어떨까요? 말하자면, 나와 나의 싸움에 또 다른 내가 들어가 심판 역할을 하는 것이죠. 너무 복잡하게 느껴진다고요? 그럼 이렇게 정리해볼까요? 찬성과 반대의 의견들을 정리한 다음 몇 발짝 뒤로 물러나서 그 의견들을 한꺼번에 비교해보는 것이죠. 숲을 보려면 멀리서 봐야 한다고 했던 것처럼, 삶이라는 전체적인 그림 속에서 마음을 정리하는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바라볼 때, 백 년 인생에서 서두르지 않아도 될 일도 많고, 때로는 이러나저러나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사소한 결정일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마음속 작용 반작용은 사실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것에는 호기심만큼 두려움이 따르기 마련이고, 좋아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더 큰 불안감이 엄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당연하다 여기지 않고 비정상적인 상태로 인지하게 되면 누구나 최대한 빨리 벗어나고자 애를 쓰게 되겠죠. 이럴 땐 다른 누군가의 의견을 따르거나, 현실적인 기준들로 타협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충분한 고민 없는 타협이 누적되다 보면, 후회할 확률은 더 커집니다. 만약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했다면, 예상치 못한 시행착오와 실패를 경험하며 '하지 말걸' 하는 후회가 클 테죠. 반대로 포기했을 때는 '어쩌면 내가' 하는 상상 속에 아쉬움이 남을 수 있고요. 따라서 빠른 타협보다는 주체적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어떠한 결정을 내렸던 '내가 내린 결정'을 스스로 수긍할 수 있다면 마음의 평화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음속 작용 반작용은 결국 어느 한쪽의 선택도 완벽할 순 없기 때문에, 찬성과 반대의 이유가 같은 힘, 반대 방향으로 우리를 끌어 당겨 평행을 이루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완벽할 순 없지만, 최대한 완벽에 가까운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끝나지 않는 싸움을 하는 것이죠. 물론 이러한 노력은 필요하지만, 너무 소모적입니다.
오히려 가볍게 어느 한쪽을 시도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쉽게 돌아서는 것이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덜 부담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러한 시도를 통해서 생각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경험을 쌓고,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자신이 새로운 선택을 하게 하는 거죠. 물론 문제에 따라서는 그렇게 할 수 없는 경우도 많이 있겠지만, 완벽에 대한 강박을 버리고 '조금 더 나은'을 목표로 할 때 불가능하게만 보이던 선택이 가능해지는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또 앞으로도 마음속 '작용 반작용'은 끊임없이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세상 어느 누군가도 저와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겠지요. 이 글이 그들 모두를 위한 '최선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겠지만, '조금 더 나은' 방법을 찾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칩니다.
위 글은 작년 7월에 블로그에 썼던 글입니다. 그리고 일 년 반 정도가 지난 오늘 똑같은 고민에 빠져들다가 이 글을 읽었습니다. 내가 나를 이끈 듯도 하고,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위해 글을 보내준 듯도 한 것이,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세상에 내가 모르는 것은 없고 나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어느 책의 문구처럼 나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언젠가 또다시 이 글을 읽고 느끼고 생각하는 내가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