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로 나로 우리로 산다는 것
옛날 옛적에 열 개의 발가락이 살고 있었어요.
오른쪽 엄지, 왼쪽 엄지, 그리고 나머지 8개 발가락들은
산길을 걷다가 왼쪽 엄지발가락이 다치게 되었답니다.
다행히 부러지진 않았지만 근육이 다쳐 통증이 심했어요.
붕대를 칭칭 감고 목발을 짚고 한 달을 지내게 되었죠.
나머지 발가락들은 왼쪽 엄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한편으로는 자기들도 다치지 않았음에 안도했어요.
“왼 엄지도 조심 좀 했으면 다치지 않았을 텐데.”라고
속삭이는 새끼발가락이 있을 정도였답니다.
왼쪽 엄지발가락은 그 속삭임을 듣고 슬퍼졌어요.
‘내가 다치려고 다친 게 아닌데…’란 생각에 억울했지만
그렇다고 새끼발가락에게 한 마디도 할 수 없었죠.
나머지 발가락들도 같은 생각일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한 주가 지나고 시간은 흘렀습니다.
목발짚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다되어갈 때 즈음이었어요.
오른 엄지는 아침에 눈을 떠 외출할 생각에 우울해졌어요.
왼 엄지가 다치고 나서 바닥을 짚을 수 없게 되자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모든 무게가 실리게 되었거든요.
오른쪽 새끼발가락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죠.
밤이 되면 발가락들은 빨갛게 부풀어올라 욱신거렸어요.
드디어 왼 엄지가 붕대를 풀고 목발을 짚지 않게 된 날
발가락들은 누구보다 박수를 치며 기뻐했을까요?
처음엔 홀가분한 표정들로 병원을 나섰는데 말입니다.
바로 오른쪽 새끼발가락이 한마디를 하고야 맙니다.
“앞으로는 좀 조심해 왼 엄지야. 우리 모두 고생했잖아.”
이 말을 들은 왼쪽 엄지는 벌컥 화를 내며 말했어요.
“이게 다 내 탓이라는 말이야? 내가 다치고 싶어 다쳤니?”
서운한 마음에 다쳤을 때부터 하고 싶던 말을 뱉은 거죠.
“그랬다는 얘기가 아니라, 한 달 동안 힘들었으니까…”
“오른쪽 엄지가 잘못해서 왼쪽 엄지가 다친 거 아냐?”
“왼쪽 새끼발가락은 그럼 그때 뭘헀는데?”
이내 발가락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하며 옥신각신합니다.
한참 시간이 흘렀지만 발가락들은 병원 앞에 있습니다.
치료해준 의사 선생님이 퇴근하려고 병원에서 나왔어요.
“아직도 여기 있었어? 계속 그렇게 서 있을 거니? 너희들 아직 다 나은 게 아니야. 제대로 걸으려면 재활운동을 해야 하거든.”
그 말을 듣고 발가락들은 우선 집으로 돌아왔어요.
하지만 서로 탓하고 싸운 뒤라 함께 있고 싶지 않았죠.
따로 떨어져 있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열 발가락들은
어색하게 침묵하며 최대한 거리를 두고 있었답니다.
그러면서 슬금슬금 서로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어요.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숨이 막힐 듯 답답했어요.
이때까지 아무 말 않고 있던 왼쪽 검지가 입을 열었어요.
왼쪽 엄지에 감겼던 붕대에 쓸려 피부가 벗겨진 채였죠.
“몰랐어? 우린 모두 한 몸인걸? 사실 나도 붕대감기 전엔 몰랐어. 움직일 때마다 붕대에 쓸리고 피가 나도 피할 수가 없더라고. 다친 건 왼 엄지인데, 내가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나 싶었어. 난 이제 붕대에 쓸리지만 않아도 살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