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만난 바이러스
오늘(11월 20일) 확진을 받고 격리 중입니다. 코로나일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 채 독감일까 걱정하며 독감 주사 안 맞은 걸 후회하고 있었는데요. 진료실에 들어서니 얼굴색이 코로나라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깜짝 놀랐어요. 아무 설명도 없이 목을 한 번 들어다 보시더니 코를 찌르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약 15~20분 후 확진자 판정을 받습니다.
코로나에 단 한 번도 걸린 적이 없습니다. 가족들 모두가 걸렸고, 작년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코로나가 유럽에서 기승을 부렸던 기간 동안 유럽 장기 여행을 했고, 코로나 확진자 수가 급등했던 지난 3월 초 한국에 돌아왔지만 코로나는 다행히 저를 피해 갔습니다. "나는 슈퍼항체야!"라는 말을 하면 바로 걸린다는 말에 조용히 있었습니다. 숨죽이고 코로나의 눈에 띄지 않게 있었다고 봐야겠군요.
물론 집에 숨어 있었던 건 아닙니다. 해외도 국내도 마음 닿는 곳은 열심히 다녔습니다. 좋은 사람들은 놓치지 않고 만났고, 하고 싶은 일들은 꼬박꼬박 챙겨서 했어요. 걸릴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걸리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퇴사 전 바쁘게 일만 할 때는 휴가 때 해외로 여행(이라 쓰고 도피라 읽어요) 떠나기 바빠 다니지 못했던 국내 로드 트립도 많이 다녔습니다. 천안, 공주, 대전, 서산, 원주, 속초, 양양, 창녕, 부산, 순천, 여수, 제주까지 골고루 다녔네요.
시작은 으슬으슬함과 잔기침이었어요. 그저 극심한 일교차 때문에 가볍게 감기가 오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목이 제법 아픕니다. 오후가 되니 기침이 점점 잦아지고요. 하지만 열도 없고 통증도 없던지라 맛있는 바비큐로 저녁 먹을 생각에 한껏 들떠 있었습니다. 다행히 장소는 펜션도 아니고 우리 가족만의 프라이빗한 장소였어요. 안심의 부드러움을 극찬하며 잡내 없이 맛 좋은 목살을 칭송하며 열심히 먹었습니다. 바로 구운 고기만큼 맛있는 음식은 없지 싶어요. 쏘맥까지 곁들여 기분을 한껏 내고는 정리해서 실내로 들어왔는데 말이죠...
갑자기 온몸을 몰아치는 한기는 옷을 껴입고 두꺼운 양말까지 신어도 가시질 않습니다. 머리를 조여 오는 두통은 미간과 눈썹, 관자놀이까지 통증이 어마어마하고요. 한기가 좀 걷히는 듯하니 손목부터 어깨허리 골반 무릎 발목까지 온몸이 통증으로 돌아누울 수 조차 없습니다. 기침은 점점 심해져 멈출 수가 없는데 한 번 기침할 때마다 골이 울리는 통증은 정말 끔찍했습니다. 타이레놀 한 알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고, 통증 때문에 잠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예전에 한 번 12시간 정도 세상이 핑핑 돌면서 아팠던 적이 있었는데, 그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고통이 걷혔을 때의 느낌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생각으로 고통에 집중하기보다는 몸을 이완시키려고 애썼어요. '요가 니드라'라는 명상요가를 듣거나 제가 좋아하는 배우의 '조근조근' 1시간 라이브 방송을 들으며 잠을 청했습니다. 쉽지 않았지만 고통과 합체되기보다 한 발짝 물러서 고통을 느끼는 것이 '너무 힘들다'라는 감정에 휩쓸리는 것을 막아주었던 것 같아요.
또한 걱정해주는 가족들이 있었기에 마음 놓고(?) 아플 수 있었습니다. 통증이 심할 때 혼자라면 불안감이 클 수밖에 없죠. 상태가 어떤지 보기 위해 들여다보고, 이마를 짚어주고(물론 코로나인 줄 몰랐을 때였어요), 필요한 걸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아주 든든한 힘이 되었습니다.
일요일 아침에 운영하는 병원까지 찾아간 것도 언니와 형부가 없었다면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럼 머리가 깨어질 듯한 두통과 한기와 근육통을 지금 이 순간까지도 달고 있었겠죠. 저보다 한 살 많은 언니는 두 살 많은 형부와 일찍 결혼을 해서 대학교 2학년 딸과 중학교 2학년 아들을 두고 있는데요. 어렸을 땐 둘이서 친구처럼 놀았지만, 언니는 결혼과 육아로 저는 일을 하느라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았습니다. 언니도 아이들이 다 커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고, 저도 일에서 벗어나 삶을 지향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면서 좀 더 자주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됐는데요. 힘들지 않게 바쁘지 않게 살아도 된다고 말해줬던 언니가 없었다면 지금의 이 소중한 시간들은 없었을 거예요.
그렇게 형부와 언니의 완벽한 케어로 저는 독방에서 편안하게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저만 쓰는 화장실도 있고, 점심은 시금치 된장국, 저녁은 해장국을 먹었어요. 귤과 젤리, 초코쿠키에 감자스낵까지 간식으로 먹었고요. 실내에서도 마스크와 손소독제로 무장하고, 인후 스프레이와 한방탕까지 더 빨리 나으려고 더 아픈 사람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고통의 정량은 동일하더라도 제가 느끼는 고통은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어젯밤에 심한 고통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기에 지금 느끼는 통증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거든요. 만약 어제의 고통이 없었다면, 오늘의 고통이 가장 힘든 시기이겠죠. 만약 순서가 바뀌어 내일 어젯밤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루 말할 수 없이 끔찍합니다.
약을 먹기 전까지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식욕도 없었는데, 약기운이 돌고 나니 방안에만 있는데도 때가 되면 허기가 지고, 먹을 것이 없나 두리번거립니다. 이러다 엄청 살이 찔까 걱정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식욕이 돌아왔다는 사실에 안도합니다. 무증상인 사람들도 있다고 하지만 코로나가 이 정도로 지나가 줌에 감사할 따름이지요.
타이밍도 무척 절묘했습니다. 내년 1월쯤 다시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있거든요. 이번에는 남부 스페인까지 넣어서 스페인, 프랑스, 영국을 들러올 계획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코로나를 가기 전에 걸리다니. 먼 나라에 가서 아프지 말라고 이렇게 미리 걸린 건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뭔가 여행 준비를 하나 마친 느낌도 드네요. 이제 더 심하게 아프지 않고 격리 7일을 잘 마무리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