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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LAXY IN EUROPE Jan 09. 2023

내 안의 맥시멀리스트

언제부터 과해지는 걸까?

유럽으로 떠날 짐을 싸고 있습니다.

석 달이 조금 넘는 여정이지만 이번엔 기내수하물 12kg 만 가져가려 하기 때문에 무게를 고려해서 짐을 싸야 하는데요. 이것도 있으면 좋겠고, 저건 꼭 필요하고, 중요한 걸 빠뜨리면 어쩌지 하면서 담는 것만 많고, 덜어내질 못하다 보니 평소보다 짐 싸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습니다.

Photo by Sigmund(@sigmund) on Unsplash

사실 지난 유럽 여행에서 슈트케이스 하나로 석 달을 또는 그 이상도 불편함 없이 살 수 있었기에 스스로를 주어진 환경에 맞춰 생활하는 ’미니멀리스트‘라 생각했는데요. 제 미니멀리즘은 위탁수하물 23kg 수준이 아니었나, 그 이하로 줄이는 건 불가능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함께 여행하는 친구는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신발 때문에 살짝 어려울 수 있지만, 충분히 가능하며 오히려 공항에서 훨씬 편리하고 좋다고 하는데요. 저도 비슷비슷하게 생긴 가방들을 노려보며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있는 걸 안 해도 된다는 생각에 다시 짐 줄이기에 박차를 가해 봅니다

Photo by ConvertKit(@convertkit) on Unsplash

어떤 걸 싸고 어떤 걸 빼야 할까?

짐을 줄이려면 먼저 ’꼭 필요한 것(must-have items)’과 ‘있으면 좋은 것(nice-to-have items)’를 분리하는 게 좋더라고요. 다 가져가고 싶고 어느 걸 가져가는 게 더 좋을지 헷갈릴 때 우선순위를 정하는 기준이 되는 거죠. 가방의 크기와 무게제한이 있으니 물건의 무게와 부피도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요소가 됩니다. 하지만 이 각각의 기준들은 주관적이며 때론 이성적이지 않습니다. 일례로 저의 최애 카페 ‘고로커피로스터스(https://instagram.com/gorocoffeeroasters )’에서 구매한 원두와 드립백들은 제 기준에선 꼭 필요하지만 커피가 없다고 유럽여행이 불가능하진 않거든요. 하지만 온기와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입맛에 꼭 맞는 좋은 커피 한 잔은 삶에 ‘꼭 필요한 것(must-have item)’이란 제 생각에 동의하실 분들도 제법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gorocoffeeroasters instagram

그럼 없어도 되는, 있으면 좋은 것들(nice-to-have items)은 무엇일까요? 지금 제 기준으로는 읽을지도 모르는 책들과 입을지도 모르는 옷들, 먹고 싶을지 모르는 한국 음식들입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의 나와 여행지에서의 나는 꽤 차이가 납니다. 취향이나 입맛이 현지화된달까요? 아마 느껴본 적 있으실 거예요. 미리 예상하고 준비해 가기보다 현지 조달하는 것이 훨씬 좋았던 기억이 많습니다. 가서 안 읽고, 안 입는 옷만큼 귀찮은 게 없어요. 그렇다고 버리고 올 수도 없잖아요? 한국 음식은 제법 유용할 때가 많지만 현지에서 입맛에 맞는 음식이나 소스, 향신료를 발굴할 기회를 사전 차단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보던 것만 보고 먹던 것만 먹어서는 여행을 했다고 할 수 없겠죠. 요약하면, 새로운 환경에 걱정이 돼서, 혹시 필요할까 봐 챙기는 짐들은 정말 ‘짐’이 돼버리는 경우가 많으니 마음을 편안하게 먹고 가방을 싸는 것이 제법 도움이 됩니다.

for making this photo available on Unsplash

내 안의 맥시멀리스트

요즘 트렌드인 ‘미니멀리즘(minimalism)’은 가져야만 행복하다고 느끼는 소비 중심의 자본주의 인간에게도 환경오염으로 앓고 있는 지구에게도 반가운 트렌드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비워야겠다고 들면 내 안의 맥시멀리스트(maximalist)를 깨우게 되지 않나 싶어요. 관성의 법칙처럼 비워진 곳을 다시 채우고 싶은 본능이 살아나는 거죠. 그렇게 주기적으로 비우고 채우기를 반복하는 것이 과연 미니멀리즘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네요.

12kg, 55x35x25cm 규격에 맞춰 짐 싸기 미션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대충 싸서 도착해서 없음 말고 가 안 되는, 담아가는 물건 하나하나에 이유가 필요한 극강의 제이(J)스러움이 한 몫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의 과(過)함을 돌아보고 나만의 ‘must-have item’을 찾는 과정이 나름 꼭 필요한(must-have) 삶의 과정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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