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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LAXY IN EUROPE Jul 30. 2023

지하철을 거꾸로 타버렸습니다.

그래서 내려서 다시 거꾸로 갈아탔습니다.

오늘은 일요일, 한없이 게으르고 싶은 날입니다. 내일이면 출근도 해야 하니까 약속도 잡지 않고 하루를 보낼 생각에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빠진 요가 보충 수업이 오늘이었습니다. 이럴 수가… ㅠㅠ 그냥 빠지기엔 수업료도 아깝고, 게으름을 이기지 못한 무력감에 편히 쉴 수도 없을 듯했습니다. 하지만 회사 근처로 등록한 탓에 일요일에 회사까지 가야 하는데 1시간 늦어진 수업 시간에 더 뜨거워진 길을 십여분 동안 걸을 생각을 하니… 과연 내가 갈 것인가? 갈등은 계속되었지요.


토요일 하루를 보내는 동안에도 문득 요가 보충 수업이 떠오르면 온갖 시나리오가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간다, 안 간다, 선생님께 평일로 다시 보충을 잡아달라고 한다, 깔끔하게 간다, 안 간다…

‘장고 끝에 악수 난다’고, 답 없는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오히려 고민 자체의 피곤함에 지쳐 원하지 않는

결론을 내리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토요일의 결론은

일요일 아침에 눈떠서 내키는 대로 한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떴더니 가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준비를 하고, 지하철을 탔는데, 지하철을 거꾸로 타버린 거였습니다. 책을 읽다 6 정거장이나 지나서 알아차렸어요.


지금은 요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입니다. 이번에는 틀리지 않고 맞게 탔습니다. 요가는 너무 좋았습니다, 안 갔으면 후회할 정도로. 아, 안 갔으면 이만큼 좋았을 줄 몰랐겠군요. 가지 않았으니까.


지하철역과 요가원까지 오가는 길은 생각보다 뜨겁지 않았습니다. 건물 그림자 사이를 몇 번 지나니 역에 도착했어요. 지하철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으니 열기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건 정말 맞는 말이에요.


사바아사나(savasana)

시체자세라고도 불리는 이완의 자세라고 하는데요. 사람은 생(生)에서 단 한 번 죽지만, 요가에서는 사바아사나를 통해 다시 새로운 나로의 재탄생을 경험한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일상에서 죽음과 가장 비슷한 ‘잠’을 자고 일어나는 것도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남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하셨어요. 실제로 세포가 죽고 다시 생성하는 과정을 겪으며 인간은 어제와는 다른 나가 된다고 합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어제와는 다른 오늘의 나는 요가를 체험하기로 경험해 이 자리까지 오지 않았나, 그리고 오늘과 다른 내일의 나는 또 어떤 결정으로 어디에 가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무엇을 하던 어디에 있든 나의 결정과 선택에 의해 가 있기를, 낯선 곳에서 잘하지 못함에 스트레스받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기를 바라 봅니다.

* 요가선생님 : 희준쌤(@_jun_yoga)

* 요가 스튜디오 : 합정 소소함(@so.soham_yo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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