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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진 Sep 25. 2019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냉정한 이타주의자> 최고의 자아로 발전하기 위한 하나의 이정표.

'아니 지금 누가 누굴 후원한 다는 거지?'


길거리에서 한 후원단체에게 정기후원을 한다는 서류를 작성하고 반년 정도 지났을 때 문득 든 생각이다. 그때 당시 나는 계속된 실패로 마음도 망가져 있었고 당연하게도 경제적으로도 여유롭지 못했다. 언제나 점심은 고시식당에서 설거지 아르바이트 대신 나오는 식권으로 해결했었고 저녁은 일주일의 반은 라면이나 3000원짜리 백반정식으로 해결하고 나머지는 여자 친구의 도움을 받았다. 일단 고시원 방값과 학원비, 책값 등은 내야 했었으니 그 외의 것들은 다 포기하고 살았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절대로 누군가를 도울 위치가 아님에도 나는 길거리에서 스티커 한 장 붙여달라는 그 말을 거절하지 못했고 오지에서 먹을 것이 없어 고통받는 아이들을 도와달라는 말을 거절하지 못해 정기후원을 결정했다. 


 아마도 '내가 이렇게 힘든데 저 아이들은 얼마나 더 힘들까?'라는 감정적인 결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편의점에 앉아 컵라면에 물을 붓고 기다리던 중 통찰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내가 오지의 아이들을 돕는다고 하면 내 친구들은 내게 무슨 말을 할까'


고시원으로 돌아와 정기후원을 취소하고 나 자신의 상태에 대해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2차 논술 시험지 빼곡히 적어 내려 갔지만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여력이 나올 구석은 없었다. 그렇게 계속 써 내려간 결과 한 가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정기후원을 하기로 한 결정은 내 밑에도 누군가가 있다는 정말 티끌 같은 비교우위를 느끼고 싶어 하는 썩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구나....'




하지만 그래도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목표는 뚜렷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내가 처한 상황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억지로 짜내거나 좋지 못한 의도로 행하는 겉모습만 아름다운 일은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금액 내에서 기부를 한다면 그때는 훨씬 선한 의도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이 목표를 향해 조금씩 전진하는 중이다. 


<냉정한 이타주의자>는 정말 읽기 힘든 책이었다. 내용이 어렵거나 표현을 이해하기 어려워서가 아닌 내 '반 자아'와 마주하게 돼서 그렇다. '좋은 일을 한다고 해서 그 좋은 일의 가치가 전부 동일한 것은 아니니 냉정하게 따져보고 가장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일을 하면 사회에 더 큰 효용을 가져다줄 수 있다. '라는 책의 메시지도 정말 좋고 마음에 새겨야겠지만 나에게 이 책은 내 성장에 있어 절대로 두 번 다시 예전과 같은 썩은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살지 않겠다는 것과 성공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는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다. 


 일단은 내 앞가림부터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야겠다. 내 가정을 잘 지켜낼 수 있게 되고 여유가 생긴다면 그때 다시 후원과 기타 다른 기부활동을 생각해보려 한다. 이런 결정이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자신과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도 못 지키는 사람이 남을 돕는다고 하면 그게 진정한 도움일까?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불편한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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