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우진 Oct 15. 2019

'Delete' 키 한 번으로 지울 수 있다면

최고의 자아로 가기 위한 첫걸음.

나는 World of warcraft라는 게임의 열성 추종자였다. 이 게임의 주요 콘텐츠는 주요 스토리라인을 따라 진행하며 거대한 악의 세력을 몰아내는 '레이드'와 지정된 필드에서 NPC가 아닌 Player끼리 전투를 벌이는 '전쟁' 두 가지였다. 나는 이 중 '전쟁' 콘텐츠에 푹 빠져 있었다.

클래식이 나왔다던데...

모든 온라인 게임이 그렇듯 완벽한 균형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나 다른 캐릭터보다 뛰어난 성능을 지녀서 overpower라 평가받는 속칭 O.P캐릭터는 존재했다. 그래서 서버에서 최상위권을 다투는 사람들은 한 가지 캐릭터만 키우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캐릭터를 키우며 패치마다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는 캐릭터를 '주'캐릭터로 육성하며 콘텐츠를 즐기는 것이 보편화되어있었다.


나는 팀에서 힐러 포지션을 맡고 있어서 '사제', '성기사', '드루이드', '주술사' 네 가지 캐릭터를 육성했다. 거듭된 패치에서 '드루이드'는 대부분의 경우 최고의 성능을 뽑아주었다. 4가지 캐릭터를 동일한 수준으로 키우기가 버거워지면서 나는 '드루이드'와 '사제'를 제외한 나머지 두 캐릭터를 지워버렸다. 그리고 그토록 바라던 시즌 검투사 타이틀을 얻을 수 있었다. (서버에서 1% 정도의 사람들만 가질 수 있는 타이틀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애정이 있는 캐릭터지만 캐릭터를 지워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후회는 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상황별 유용함이 있겠지만 최고라 생각되는 캐릭터는 하나가 존재했고 나머지를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 별다른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반 자아에서 벗어나는 일도 게임 캐릭터를 지워버리는 것처럼 단순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쉽게 지워버리고 '최고의 자신'에 한걸음이라도 다가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지만 우리의 삶에 Save와 Load기능이 없듯이 반 자아에서 벗어나 최고의 자아로 다가가는 것은 게임에서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반 자아. 모든 사람에게는 반자 아가 하나, 아니 그 이상이 있어, 두려움과 불안 같은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을 유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베스트 셀프 p.64>'


반 자아도 일종의 자기 방어기제다. 스스로를 위험상황으로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이든 의도하지 않은 학습에 의해서든 형성된 자아다. 단지 이 반자 아가 상황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을 주지 못할뿐더러 많은 경우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켜 문제가 된다. 이 반 자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 시작은 반 자아의 정체부터 파악하는 것이다.  먼저 자신의 성격에서 결함이라 생각되는 특성들을 빠짐없이 써보자. 스스로를 돌아보며 깊게 생각해 보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가이드가 필요하다면 마이클 베이어의 <<베스트 셀프>>를 참고하는 것을 추천한다. <<베스트 셀프>>에서는 성격적 결함을 찾아내는데 도움이 되는 질문뿐 아니라 반 자아의 특성이 될 수 있는 단어들이 사전처럼 나열되어 있어 자신의 반 자아를 알아가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변화가 절실한 당신에게 충실한 가이드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책이라 자신합니다.


반 자아의 특성을 글로 써보았다면 글을 바탕으로 반 자아를 그려보자. 이미지화 과정을 거쳤다면 이름도 붙여주자. 이 과정을 통해 반 자아를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생각 덩어리에서 형태를 가진 하나의 객체로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하나의 객체로 반 자아를 인식하게 되면 반자 아가 상황을 악화시킬 때 좀 더 수월하게 그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반 자아의 이름은 <야누스크리트>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야누스와 콘크리트의 합성어이다. 이 반 자아는 굉장히 경직되어 있고 수동적인 것이 특징이다. 상황이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하면 변화를 만들거나 녹아드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돌처럼 굳어버린다. 내가 속할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고서는 무관심한척하며 현실도피적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이 반 자아의 속내는 겉모습처럼 굳어있지 않다. 상황을 주도하는 사람들에게 열등감과 시기를 느끼면서도 그래도 이거 하나만큼은 내가 낫다며 정신승리에 빠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울감에 빠져들어 나를 힘들게 한다.


이렇게 어마 무시한 반 자아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존재도 있다. 그의 이름은 <......>이다. 그는 내 최고의 자아에 해당하는 모습인데 <야누스크리트>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존재이다. 그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다음 기회에! 오늘은 반 자아에 집중하도록 하자.


반 자아를 분석하고 이미지화하는 과정은 굉장히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다. 하지만 자신이 벗어나고 싶은 모습을 구체화하는 과정은 변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이 과정이 없다면 부정적인 모습을 본인 스스로라 생각해 더 깊은 자기혐오에 빠질 수 있다. 벗어나고 싶은 자신의 모습이 내 진정한 자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최고의 자아'로 가는 첫걸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중요한 것은 '나'에서 시작돼야 한다는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