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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라 May 04. 2022

2주 동안 길거리에서 전도지를 나눠주며 느낀 점

미련한 일처럼 보이는 전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다

런던에 다녀온 후 하나님께서 전도 사역을 통해 놀라운 일들을 많이 행하시는 것을 많이 목도하였다. 그 때 받았던 특별한 마음으로 클라네클리에 돌아와 짧지만 매일 전도를 하고 있다. 하루 중 한 시간 정도를 한다. 나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 때면 '오늘은 30분만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나가는데 타운 센터까지 돌고 오면 금방 1시간이 되어 있다. 어디를 나가는 날은 가는 길과 오는 길에 전도지를 나눠준다. (참고로 저는 한국에서 장로교회를 다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기독교인입니다.)


지금까지 선교지로 갔었던 중국이나 터키에서는 길거리에서 전도지를 나눠주며 하는 전도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전도지란 전도를 했다는 증거를 남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있었던 중국의 지역은 민감한 곳이어서 길거리에서 눈에 띄게 전도를 할 수도 없었다. 한국에서의 길거리 전도란 물론 불법은 아니지만 워낙 많은 이단들이 판을 치고 있는 마당에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인 느낌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나의 나라에서 전도하는 것이란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었기에 엄두도 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원래 전도를 잘하거나 기꺼워하는 사람이 아니다. 길거리에서 예수를 외치며 휴지며 사탕을 나눠주는 사람이나 투박한 글귀가 쓰여진 팻말을 들고 전도하는 사람들을 보면 "꼭 이런 방식으로 해야만 하나?"라고 속으로 조용히 비난했던 크리스천 중에 한 명이다.


그들을 보면서 품었던 반감이나 내가 타국에서 전도하며 느꼈던 어려움들로 나는 '더 열심히 해서, 사람들이 받아들일 만한 방식으로' 선교를 하고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공부도 했고, 글도 쓰려고 했다. 그러나 만약 내가 사람들이 받아들일 만한 방식으로 전해야만 하는 진리라면 그것이 완전한 진리라고 할 수 있을까? 사도 바울은 복음이 결코 말의 지혜로 말미암지 않음을 분명히 알려준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전서 1:17, 개역개정)


2주 정도 매일 거리에 나가 그토록 싫어하고 힘들어하며 '나는 절대 못해'라고 여겼던 전도를 해보면서 느낀 점은 하나님께서는 정말 이러한 전도를 기뻐 받으신다는 것이다. 예민하고 남의 눈치를 잘 보며 혼자 있기를 편해 하는 나같은 내향형이 매일 거의 혼자 거리에 나설 수 있었다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 일은 나의 의를 위한 것도, 전도지를 받는 사람을 내가 전도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도 아니었다. 오직 그분이 지금 이곳 가운데 그 일이 벌어지기를 원하셨으며, 나를 사랑하시기에 그것을 나를 통해 행하신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강제적으로, 원치 않는 마음으로 한 적은 없다. 그 분은 그런 것을 받지 않으시니까. 나의 육은 거리에 나가길 꺼려 하나 나의 영은 그것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영과 하나 됨을 기뻐하기 때문에 나는 거리로 나갈 수 있었다. 나가고 싶지 않고 사람들의 반응이 두려울 때 나는 그런 날 더욱 귀한 누군가를 만나 전도할 수 있다는 마음을 품으며 육을 떠밀었다. 그것은 결코 나라는 인간이 생각해내거나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영의 일 가운데 그러한 충돌이 있기 때문이며 나는 어느 쪽 편을 들어야 할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클라네클리의 핑크 구름과 새



나는 여전히 공부를 할 것이고, 많은 세상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인생에서 보기를 소망하며 글을 쓸 것이다. 그것도 내가 꿈꾸고 기도하는 영역이다. 나라는 사람이 즐거워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정말 그런 글을 쓸 수 있으려면 가만히 의자에 앉아 책을 읽거나 많은 글을 연습해서만은 불가능함을 깨닫는다. 한쪽으로는 틀어박혀 공부하고 지성인들 신앙인들과 생각을 나누고 고민하여 글을 써나가야 하지만 한쪽으로는 계속 거리에 나가 미련한 일을 해야 한다. 상반되어 보이는 두 가지 일은 서로를 보완하며 도울 것이다.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공부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을 직접 살아보아야 한다.


결국 내가 글을 쓰려는 것도 사람들의 마음에 가 닿기 위함이며 그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것이다. 전도란 내가 직접 사람들에게 다가가 예수님을 이야기하고 그들의 삶을 축복하는 일이다. 이것만큼 직접적이고 확실한 다가감이 있을까? 길을 갈 때 평소에 전도하지 않을 때는 그냥 별 의미 없이 스쳐지나갔던 사람이, 전도를 하면 그의 인생을 축복하게 되고 그에게 눈을 맞추게 되고 전도지를 받든 받지 않든 그의 삶을 영적으로 한 번 흘끗 보고 그 순간에 그 삶에 온 마음으로 예수님을 만날 축복을 기도해주게 된다. 같은 신앙인을 만났다면 서로를 축복하며 길을 가게 되는 특별한 일도 일어난다. 먼저 다가가지 않았더라면 결코 알지도 못하고 볼 수 없었을 사람들의 이름과 삶을 듣고 알게 된다. 그리고 나는 그 여러 사람들을 통해 인간이 누구인지를 알아가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간다. 바로 그것이 나에게 무한한 축복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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