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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라 Oct 31. 2022

젊었을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이태원 할로윈 파티가 있었던 날 서울에 머무르면서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전도서 12장 1절)



지난밤 서울에 있었다. 따스한 햇빛이 비추면서도 서늘한 바람이 부는 가을 날씨에 많은 사람들이 바깥에 나왔다. 토요일 안국역을 지나 덕성여중에 내렸다. 그곳에서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많은 인파가 그곳에서 꽃구경을 하던 것을 기억한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외국인도 꽤 보였다. 흐릿하게 들려오는 외국어를 듣는 것도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다음 날 경험하는 서울은 온통 회색빛이 된 것 같았다. 분명히 어제와 비슷한 기온에 따뜻한 날씨, 파란빛의 하늘이었는데도 말이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나를 포함해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이 '살아남은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마음 속 침울함은 나는 어제 그곳에 없었다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무사하다는 안도감을 압도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우리 중 누구도 어젯밤의 비극을 예측하고 막아낼 수 없었듯이 우리의 다음도 그러하다. 뉴스에서 전해듣는 151명.. 이제는 153명으로 늘어난 사망자는 우리에게 죽음의 숫자로 올 뿐이고 우리는 곧 그것에도 무뎌질 것이지만, 그 한 명 한명에 얼마나 많은 인생과 영혼들이 연결되어 있는가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 상황을 그저 우연한 비극으로 보아 넘길 수 없다. 


약 10만 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 대다수의 청년들이 그곳에 모인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 여러 가지로 답할 수 있겠지만 결국은 무언가를 따라간 것이다. 우리 나라에는 없던 할로윈 문화로 독특한 자기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 친구들과 파티 분위기를 즐긴다는 것 등이지만 대부분은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라기보다 호기심에, 놀러 그곳을 방문했을 것이다. 가려고 했지만 못 간 사람, 갈 생각이 없었지만 이끌려 간 사람의 차이를 꼬집어 말할 수 있을까?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도 이 도시와 청년들이 무언가를 따르고 있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악이 존재한다면 악은 수많은 인파 위에서 그들을 조롱하며 낄낄댔을 것이고, 또다른 악은 대단히 악한 심정으로 혹은 대단히 악한 무관심으로 '밀어, 밀어!'를 외쳤을 것이다. 사람들이 깔려 목숨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이곳에 온 그들의 잘못이라며 혀를 끌끌 찼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누구에게 밀침을 당하고, 누구에게 떠밀려 가고 있는지 아는가? 어쩌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 왜 오게 되었는지를 우리 중 누가 정확하게  볼 수 있으며 말할 수 있을까? 


도시여, 이제는 누군가 우리를 끌어가도록 두지 말자.

우리가 스스로의 눈으로 보고 스스로 걸음을 정한다고 해서 결코 우리의 의지로 걷고 있는 것이 아니니. 

많은 것들이 우리를 묶고 있고,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 하려 세상의 번쩍이는 불빛과 시끄러운 음악 소리로 그것을 듣지도 찾지 못하게 만든다. 단지 이른 죽음을 피하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에게나 죽음은, 그 때는 피할 수도 알 수도 없는 것이다. 다만, 이 세상에서 거하는 동안에 우리가 눈먼 길로 가지 않기를 원한다. 

나도, 그 어느 누구도. 우리가 어디 있는지, 어딜 가는지. '술이나 마약에 취하지 않고 냉정하고 깨어 있는'(sober)상태로 알기를 원한다. 


눈을 돌려 선을 바라보면 마침내 우리가 악하다는 것을, 그것에 끌려감을 깨닫는다.


청년이여, 젊었을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그는 우리와 자신 사이에 놓여 있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심연을 극복하기 위해

그 자신의 몸을 우리와 같이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부수었다. 

인간들과 그들의 죄의 무게에 친히 자기 자신을 가장 아래쪽에 두었다. 

그를 목자 삼고 따라가면 우리는 죽을지언정 기쁠 것이다. 마침내 보게 된 하늘 건너편에. 


때가 차면 우리의 목자가 모습을 나타내고 한때 우리를 끌고 갔던, 우리가 사랑하는 이웃들을 끌고갔던 이의 더러운 손을 불사르리라. 

복수의 날이 마침내 도래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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