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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라 Oct 15. 2022

절대 안 될 것 같은 플립턴 도전기(3)

다섯 번째 수영일기_도전은 성공했다 

영국에서 시작된 나의 플립턴 도전기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두번째 글을 쓴 이후에도 수많은 벽과 마주했고, 물이 코로 들어가 머리까지 띵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으며, 발이 닿지 않아 허우적거리며 출발해야 했던 적도 많았다. 그러나 내게 플립턴이 어려웠던 이유는 벽으로 다다를 즈음 나를 괴롭히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결코 '성공하냐 마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늘, '해 볼것이냐 말 것이냐'였다. 


혹시나 이 글을 통해 플립턴의 팁을 전수받으려고 하셨던 독자가 있다면 죄송하게도 딱히 알려드릴 것은 없다. 유튜브의 자세한 소개영상을 보거나, 수영장 옆 레일에 항상 존재하는 돌고래 같은 수영실력의 소유자에게 직접 비법을 전수받는 것이 가장 정확하고 빠른 길이다(그런 분들은 내가 먼저 도움을 청하지 않아도 늘 먼저 다가와 이것 저것을 알려주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서 내가 느꼈던 것, 하고 싶은 말은 뻔하게도 "많이 해 보는 수 밖에 없다"이다. 나에게는 생각이 앞서기 전 몸을 먼저 시도의 장으로 내던지는 것이 답이었다. 계속 그렇게 몸을 먼저 보내다보면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두려움보다, 실패하면 멋쩍을 것이란 창피함보다, 코가 맵고 머리가 아플 거라는 걱정보다 몸이 먼저 튀어나가게 된다. 생각과 염려가 많은 나에게는 몸을 먼저 앞서 보내는 것이 좋은 답이었다. 결국 그렇게 해서 나는 결국, 수많은 돌기 끝에 예상하지 못한 순간부터 플립턴을 멋지게 성공할 수 있었다. 




무서움 없고 유연한 몸을 가진 누군가는 '이거 하나 해보는 것 가지고 글까지 썼네'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별것 아닌 무언가에 처음 도전하고 계속 실패하는 나에게는 하나의 넘어야 할 산처럼 느껴졌고, 물속에서 내가 짚고 돌아야 할 그 벽이 나에게는 인생의 벽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벽에서 멈춘 나는 내가 넘지 못하는 수많은 벽들을 떠올려보게 된 것이다. 이를테면 지금의 나에게 소설 한 편 완성하기, 소논문 완성하기, 나아가 석사논문 쓰기 같은. 미운 구석밖에 보이지 않는 사람 사랑하기 같은. 물속에서는 벽이라도 보았지만 현실에서는 벽도 보이지 않는 여러 가지 높은 산들이 인생에 존재하고 있다. 


플립턴을 성공했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수영에서도 넘어야 하는 산이 많다. 한국 수영장에서는 단체로 다이빙 연습을 하는데, 나는 여전히 다이빙도 잘 안 된다. 그것은 또 다른 산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그것도 플립턴과 같이 과감하게 들어가는 것이 어려웠고 자세를 유연하게 만드는 부분에서 계속 실패했다. 나의 배치기와 어설픈 다이빙을 지켜보던 수영장의 이웃들은 내가 물을 무서워한다고 했다. 실제로 내가 무섭다고 느끼지는 않지만 나의 몸은 다이빙 직전 두려움과 주저함을 가지고 뛰어드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실패의 요인이다. 


저번의 플립턴은 도와주는 사람 없이 혼자 해내야 했다면, 다이빙하는 것은 꽤나 많은 사람들이 나 한 사람에게 붙어(?) 도와주고 있다. 마치 자신의 일처럼 나서서 자세를 잡아주고, 지켜봐주고, 격려해준다. 그렇다 보니 자세가 점점 나아지고 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일은 특별하고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결국 그 동작을 성공해야하는 것이 온전히 내 몸이듯 결국은 나와의 싸움이 남는다. 실패하는 내 모습, 누군가가 보고 있는 내 모습, 물을 먹을까 머리를 찧을까 고민이 앞서기 전에 몸을 던져야만 한다. 글이 잘 안 써지고 묘사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상상하기 이전에 내 손가락을 먼저 키보드 위로, 종이 위로 던져내야 한다. 나를 지키려 두려움과 스트레스를 피하는 내 의식이 고맙지만 때로는 그것보다 빠르게 튀어나가자. 헛돌더라도, 코가 맵더라도 시도한 나 자신이 더 맘에 들고, 그 시간들이 결국 성취해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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