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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라 Jul 01. 2022

절대 안 될것 같은 플립턴 도전기 (2)

네 번째 수영일기_ 벽 앞의 두려움을 마주하다

코로나 이후 쉬었던 수영을 시작한지도 근 1년. 영국 웨일즈에 체류하면서도 동네 수영장에 다니기 시작한지도 3개월 즈음이 되었다. 그러던 중 영국인들의 멋진 플립턴에 반해 나도 한번 멋지게 돌아보리라 결심하고 연습을 시작한 지 몇 주가 흘렀다. 나무위키에서는 플립턴을 '수영장 끝에 다다랐을 때 앞쪽으로 반 정도 돈 다음, 벽을 두 다리로 힘차게 밀어 다시 반대편을 향해 나아가는 턴을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플립턴


수영을 배울 때는 처음부터 수영하며 앞으로 나가는 것을 배우지 않는다. 처음 접하는 수영동작을 배울 때는 동작 하나하나를 따로따로 배운 후 그것을 연결하는 식으로 배우게 된다. 자유형은 키판을 잡고 발차기를 배운 다음이면 키판을 잡고 팔을 천천히 돌리는 것을 배운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가 엄마의 잡은 손을 떼고 아장아장 걷듯이 수영도 키판을 떼고 천천히 하나, 둘, 셋...하는 리듬에 맞춰가며 동작을 연결하게 된다. 


플립턴을 배우는 것도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자유형이나 몸을 웨이브로 돌리고 팔까지 크게 돌려야 하는 접영보다는 훨씬 단순한 동작이다. 몸을 잘 돌렸다면 거기에서 더 할 것이 사실은 없는 동작이다. 몸을 돌리고 발바닥이 벽에 잘 붙었다면 밀고 나오면 된다. 팔이나 방향도 신경써야 하겠지만 우선은 '몸을 돌리는 것'이 성공적으로 된다면 턴의 목적은 달성한 것이 된다. 



팔을 뻗거나 차고 나갈 때 몸의 방향을 우선 생각지 않는다 해도, 나는 여전히 몸을 돌리는 것에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고, 무엇보다 벽을 보고 돌아야 하는 적정한 거리를 알기가 쉽지 않았다. 너무 가까이 갔다간 제대로 돌지 못하게 되거나 발이 벽에 너무 가깝게 된다. 너무 멀리 있다가는 몸만 돌리고 발이 벽에 닿지 않아 그대로 가라앉게 된다. 나의 문제점은 몸을 돌릴 때 몸이 완전히 다 말려 돌아가지 않고, 자꾸 옆으로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앞구르기를 무서워하면 꼭 옆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자꾸 몸이 옆으로 돌아가고, 몸을 마는 것도 힘겹다 보니 이제는 자유형으로 왔다갔다 수영을 할 때마다 연습하는 게 꺼려졌다. 무엇보다 잘 돌지 못하고 옆으로 넘어지듯 도는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울게 뻔해서, 주변에 사람이 있으면 거의 시도하지 않았다. 연습을 해야만 향상될 텐데, 벽을 볼 때마다 나는 두려웠다. 그리고 조금의 짜증도 났다. "안 되면 그냥 수영이나 하면 된다, 편하게 생각하자" 하지만 수영장 끝에 다다를 때마다 다시 '해볼까..'하는 마음이 밀려왔다. 고민을 하는 사이 턴을 돌 수 없이 끝에 가까워져 있었고 결국 손으로 짚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렇게 수영장 끝에 다다른 수 많은 순간 속에서 나는 좌절감을 느껴야 했다. 



옆 레일의 수영인들이 아무런 고민 없이 몸을 말아 돌아 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어떠한 '흐름'이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팔을 안정적으로 차렷 자세를 만들고, 턱을 밑으로 확 당기면 몸이 그대로 따라온다. 나는 이런 관찰을 토대로 다시 한번 시도해보았다. 그랬더니 거의 성공에 가까운 턴이 만들어졌다! 그것은 우선 내가 관찰한 사실이 맞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것이었다. 팔을 안정적으로 두고, 턱을 당기면서 고개를 자연스럽게 밑으로 당겨내며 고개에 가해지는 힘으로 상체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느낌을 몸에 새기려고 노력했다. 그랬더니 나의 문제점이 바로 보였다. 나는 억지로 상체를 돌리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니 몸이 자연스럽게 따라오지 않고 힘이 가해지면서 옆으로 틀어졌던 것이다. 


일의 실패가 힘을 너무 많이 주고 있어서라니.. 사실 수영을 배우면 '힘을 빼라'는 말을 자주 듣곤 한다. 수영을 시작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물에 몸을 띄우는 것이다. 그러려면 몸에 힘을 빼야 한다. 수영 영법을 배울 때도 마찬가지다. 동작을 하다 보면 특정한 근육이나 부위에 힘이 들어갈 일은 있지만, 거의는 물 속에서 자연스럽게 힘을 빼고 진행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플립턴도 몸 상체를 접어 돌리는 꽤나 부담스러운 동작(?)이지만, 그마저도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할 때 성공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내 머릿속을 떠다니는 여러 상상과 이야기들은 멋지게 돌아 나가는 턴의 그림과도 같고, 그것을 활자로 옮겨 적는 것은 뻣뻣한 내 몸에 힘을 빼서 부드럽게 만드는 과정과 비슷한 것 같다.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수많은 벽을 보아왔던가. 쓰고자 하는 이야기는 머릿속에서 다채롭게 굴러다니지만 막상 키보드 앞에 앉으면 무언가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멈춰버린다. 그런 상태에서는 몸에 힘이 들어가 옆으로 돌아 버리는 나의 플립턴처럼 도무지 무언가가 써지지 않고 가로막혀 버린다. 사실 플립턴을 할 때나 글을 쓸 때 내가 마주하는 두려움은 같은 종류다. "이번에도 실패할 것 같다"라는 두려움. '내가 원하는 모습대로 완벽하게 되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이다. 


나는 계속 벽만 바라보게 될까? 플립턴을 멋지게 돌아 나가는 것을 성공하는 것처럼, 내 깊은 곳에서 시작된 그 '이야기'를 글로 적어 끝맺는 것을 마침내 볼 수 있게 될까? 나는 아직도 과정 중에 있다. 


-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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