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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라 Dec 24. 2023

아슬란에게 시선을 집중하는 순간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그분을 대면하고 그분께 순종함으로 

소설 <나니아 연대기>의 <캐스피언 왕자> 편에서 네 아이들, 피터, 에드먼드, 수잔, 루시는 영국에서 갑자기 나니아 세계로 돌아오게 되고, 난쟁이 트럼프킨을 만나 캐스피언 왕자를 돕고 빼앗긴 나니아 왕국을 되찾으러 길을 떠난다. 길은 멀고도 험하고 이미 그들이 떠난 이후로 나니아 나라에서는 한참의 시간이 흘렀기에 길도 그들이 기억하는 길이 아니다. 그러다가 루시는 건너편 협곡에서 나니아의 왕, 아슬란의 모습을 본다. 루시는 아슬란이 자기들을 부르고 있으며, 그쪽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은 루시의 편을 들어주지 않으며 아슬란을 보았다는 것도 믿지 않는다. 루시의 말을 듣지 않은 일행이 택한 길이 위험한 길이었음이 드러나고 결국 루시가 말했던 방향으로 길을 옮기게 되지만, 여전히 일행들은 회의적이고 특히 언니 수잔은 루시가 고집을 부린다고 생각해서 불평과 짜증을 드러낸다. 


루시라고 수잔의 불평에 기분이 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언니에게 쏟아내고 싶은 모든 분노와 억울함을 삼키고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앞서 가는 "아슬란에게 시선을 집중하는 순간 루시는 모든 것을 다 잊어버렸다"... 내가 주목한 건 이 문장이었다. 왜냐하면 내 안에도 불평이 들어차 있기에. 내가 보고 느끼는 것을 함께 보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지금의 이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들은 나를 바보 취급 하거나 특이하다고 여길 것이고, 나는 그들을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한심한 존재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 이런 것들을 잠재우고 잊어버리려고 애쓸 수는 있다. 그러나 그보다도 확실하게 모든 걸 떨구어낼 수 있는 것은 이런 거다: "시선을 집중하는 순간 모든 것을 다 잊어 버렸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건 이런 것 같다. 그 존재 앞에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생각들이 잊혀지고, 그에게 압도되는 것. 어쩌면 내가 그분을 제대로 대면하지 못했기에 나 자신이나 이웃에 대해 섣불리 불평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오늘 사자를 기다리겠다. 아니, 어쩌면 지금 내 앞에 와 계시는 그에게 내 마음과 눈이 열리도록 간구할 것이다. 


루시는 잠에서 일어나 자고 있는 일행들을 깨워 지금 떠나야 한다고 재촉한다. 그것은 그 직전 자신을 만나러 온 아슬란이 나머지 일행을 '깨워서' '자신을 보았다고 말하고' 일어나 '자신을 따르도록' 말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결국 루시를 따르지만 여전히 회의적이었고, 수잔은 자신의 불만을 드러내기까지 한다. 하지만 일행이 무조건 잘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루시는 아슬란을 볼 수 있지만 이들은 아직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 중에서도 가장 어리고,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아슬란을 사랑하고 그리워했던 루시는 아슬란을 볼 수 있었고, 아슬란이 자신을 만나러 왔을 때도 잠에서 깨어 일어날 수 있었다. 아슬란이 나타난 그 때에 일행들도 그곳에 같이 있었지만 보지 못했기에, 그들은 더욱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아슬란이 보이지 않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루시는 아슬란의 명령에 먼저 순종한다. 일행이 자신의 말을 이미 믿지 않았고 나이가 가장 어리기에 쉽게 무시당하고 업신여김을 받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것에 두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아슬란의 가까이에서 그에게 힘을 얻는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지만, 루시 자신이 힘을 얻고 변화하였다. 일행이 루시의 말을 듣고 아슬란이 인도하는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그들은 서서히 아슬란의 그림자부터 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수잔은 맨 마지막에 그의 존재를 보게 된다. 그들은 완전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지만 아슬란의 명령을 따르면서 그의 존재를 보기 시작하였다


예수님이 다시 오심을 기다리면서 아직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분을 보고 따를 수 있도록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루시의 이야기는 많은 공감과 또 희망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만 있다면 루시가 그랬던 것처럼 사자의 갈기에 얼굴을 파묻고 그가 주는 용기와 힘을 다시금 얻고 싶어한다는 것도. 우리가 그의 앞에 대면하여 모든 불만스러움과 억울함, 고통과 외로움을 단번에 잊어 버리고 그에게 압도되어 더 큰 존재 안에 삼켜지고 싶다는 것도. 오늘 나에게는 절실하게 필요하다. 논문 작성에 괴로우면서도 그 덕분에(논문 작성을 위해 읽고 있다) 누군가가 사자와 루시의 이야기 속에 들어가보도록 해 준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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