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요셉의 두 번째 인내: 누명과 갇힘

이집트의 요셉 (2)

by 아일라

아버지의 사랑을 받던 히브리인 귀공자 요셉은 형들의 배신을 당해 이집트 땅으로 오게 되었다. 그러다 경호대장 보디베라의 집에 노예로 팔리게 되고, 그의 눈에 띄어 그 집의 사무를 감독하는 관리인이 되었다. 비록 종이라고 해도 어찌 보면 나쁘지 않은 결말이 될 수 있었다. 몇 날들은 고향과 아버지를 생각하며 눈물 흘리고, 다른 몇 날들은 자신을 잔인하게 배신해버린 형들을 떠올리며 분노에 떨었겠지만. 그런 날들도 시간이 흘러갈수록 새로 살아가게 되는 날들에 의해 옅어지는 법이다. 무엇보다 지나간 날들을 생각하기에는, 경호대장의 집이 너무나 넓었고 할 일이 넘쳐났을 것이다. 무려 감옥도 딸려 있는 집이니 그 규모는 작지 않았을 것이다.


요셉이 보디베라의 모든 집안일과 그의 소유에 대한 관리를 다 맡게 된 때부터 여호와께서 그 집에 복을 주셨다.(39:5) 여기서 성경은 보디베라를 '그 이집트 사람'이라고 칭한다. 이스라엘의, 야곱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이방 신을 섬기는 이집트인의 일에 관여하신 것이다. 그것도 아주 좋은 쪽으로. 그 복은 모든 공간을 초월하여 이집트에 팔려온 한 명의 노예를 통해서 그 이방인에게 내려왔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보디베라도 그것에 대해 무지하지는 않았다. 젊은 나이의 히브리 노예일 뿐인 요셉을 알아보고 그에게 자신의 집에 관한 모든 일을 맡길 정도라면, 보디베라도 사람을 볼 줄 아는 눈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하나님이 그의 눈을 뜨도록 해 주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보디베라는 왕의 최측근이며,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던가. 보디베라는 요셉에게 자신이 먹는 것만 제외하고 모두 맡겼다고 한다. 집안일에는 자신의 사적인 영역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라, 보디베라가 요셉을 신뢰하는 정도는 마치 가족을 신뢰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요셉은 심지어 성경이 용모가 뛰어난 자였다고 묘사하는 몇 안되는 인물 중 하나다(39:6). 곧 요셉은 부리는 종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이집트에 와서 고생을 하다 보니 조금은 사연 있어 보이고 총명한 분위기의 미남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마치 한국의 뭇 남성들이 군대를 다녀오면 얼굴이 까무잡잡해지고 몸의 근육이 잡혀 남자다움을 얻게 되는 것처럼, 아버지의 집에 살 때는 고생을 모르고 자란 새하얗고 포동포동한 소년이었던 요셉이 이집트 땅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로 살며 배신과 고난을 겪고 마음에 굳은살이 생긴 것처럼 외모도 조금 더 준수하고 성숙하게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거기다가 보디베라의 모든 일에 복을 내리게 한 장본인이 아니던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이라도 요셉이 아주 잘생겼다는 것 외에도 무언가 다른 청년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여기서 바로 그 '유혹 사건'이 등장한다. 이집트로 팔려와 고생 끝에 보디베라의 총애를 얻어 한 숨 돌리나 했더니만, 이제는 노예도 아니고 불명예스러운 죄인이 되어버린다. 보디베라의 아내가 요셉을 성적으로 유혹하여 실패하자 그에게 누명을 씌워 감옥에 가게 된 그 사건이다. 보디베라가 사람 볼 줄은 알고 일에 있어서는 좋은 능력을 지녔을지는 모르지만, 여자 보는 눈은 확실히 없었던 듯 하다. 보디베라의 아내도 보디베라의 신분을 생각하면 평범한 여자는 아니었을 것이다. 신분이 높거나 아름답거나 둘 중 하나 또는 둘 다였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의 외모, 능력, 위치로 자신의 종이기도 한 요셉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녀는 보디베라가 없을 때 요셉에게 눈짓하며 그를 침실로 유혹한다.


그 때 요셉이 한 말을 조금 풀어서 써보자면 다음과 같다.


"보십시오, 내 주인이 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다 내 손에 맡기고 간섭하지 않으십니다. 말하자면 내가 이 집에 있는 모든 것을 제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주인이 그것에 대해 일절 터치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이 집에서는 저보다 더 권력을 가진 자가 없는 거지요. 그러나 단 한 가지 제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은 주인의 아내인 당신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내가 마음대로 한다 하여도 당신만은 예외입니다. 제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큰 악입니다. "


요셉은 보디베라의 집에서 자신의 위치를 잘 알았다. 다른 어떤 것들은 자신이 판단하는 대로 보디베라에게 묻지 않고도 실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보디베라의 아내만은 예외이다. 만약 자신이 그녀에게 연정을 품었다고 해도, 그녀만은 어떻게 할 수 없다. 이 말을 하는 것은 어쩌면 보디베라의 아내에게 하나님께 죄짓지 말도록 권면할 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그것이 큰 악임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요셉은 완곡하고 정중하게 거절했지만, 그 여자는 한 번 정도 튕긴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무슨 여자가 자존심도 수치심도 없는건지 날이면 날마다 요셉에게 하룻밤을 함께하자고 보챘다고 한다. 솔직히 나는 이러는 여자가 너무 매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자신보다 나이도 많을 유부녀였기에 요셉이 이 여자와 한 번 자고 싶은 마음이 뚝 떨어졌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한창때의 남성에게 이런 유혹은 참기 어려운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날이면 날마다 청했다고 하는데 같이 있지도 않았던 것은 지긋지긋해서였을수도 있지만, 조금만 더 있다가는 넘어갈 수도 있다는 위험을 감지하고 아예 그 자리를 떠나버린 거라고도 볼 수 있다.


어느 날 보디베라의 아내에게 절호의 기회가 한 번 더 찾아온다. 집에 요셉과 자신 말고 아무도 없는 그 순간이었다. 이 끈질긴 여자는 요셉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의 옷자락을 잡아챈다. 오늘은 아무도 없으니 조금 더 세게 나가자. 자신이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다가오는데 이제는 별 수 없이 허물어지고 말거야. 그러나 요셉은 여자에게 잡히는 대신, 그리고 자신이 여자에게 손을 대어 밀어내는 대신, 잡힌 자신의 옷을 벗어던지고 밖으로 나간다. 털끝만큼도 잡히지 않겠다, 유혹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강한 저항의 표시이다. 여자는 엄청난 수치심과 분노에 사로잡힌다. 자신이 그에게 가졌던 모든 애정과 욕구는 더 큰 증오와 복수심으로 바뀐다. 그녀는 소리를 지르고 자신이 그에게 하려 했던 그 강간을, 그가 한 것으로 만들어 자신의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그의 것으로 덮어씌우려 한다.


나는 이 사건이 하나님에게로부터 왔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모든 일이 하나님의 허락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다. 이 사건도 하나님의 전능한 손 가운데서 일어났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요셉은 어리석었을 수도 있다. 여주인의 비위를 한두 번 정도 맞춰준다면, 자신은 보디베라의 집에서 그 어떤 때보다도 자신의 위치를 곤고히 다질 수도 있었다. 편한 자신의 방에서 하루 세 끼 좋은 음식들을 먹고, 여러 일들을 지혜롭게 처리하여 앞으로는 보디베라의 총애를 받고, 뒤로는 보디베라 아내의 사랑을 받으면서 말이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을 보았다. 이런저런 계산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위험이 닥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했던 것이 아니라, 히브리 땅에서부터 이 낯선 땅인 이집트에서까지 줄곧 자신과 함께 있었던 하나님을 말이다. 하나님도 요셉을 보고 계셨다. 진정한 믿음은 위기의 순간에 드러난다. 우리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평온한 순간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 예수님을 위해 죽겠다”고 얼마든지 고백할 수 있다. 다만 실제적으로 내 앞에 위험이 찾아왔을 때 그런 고백 대신 분노하거나, 원망하거나, 깊은 우울에 빠진다.


* 하나님, 왜입니까?



요셉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다 잃고 자신이 가장 높은 자리에 있던 그곳에서 가장 낮은 곳인, 보디베라의 집에 있는 감옥으로 추락한다. 그것은 자신의 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누군가의 죄악 때문이었고 오히려 그 죄악에 연루되는 것을 거절하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자신은 죄를 짓지 않으려고 몸부림쳤는데, 그 댓가는 주인의 아내를 범하려 했다는 아주 불명예스러운 오명과 강간미수범이라는 치욕이었고, 차디찬 감옥의 바닥이었다.


이해되지 않는 고난을 만났을 때의 우리는 모든 말을 잃어버리고 아연실색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도대체 어디 계셨단 말인가? 이 일이 일어나기 이전까지 줄곧 요셉과 함께하지 않으셨던가? 그가 이집트에 온 이후로 줄곧 말이다. 또 보디베라의 집에서 그의 모든 일을 관리를 맡았을 때, 여호와께서 요셉으로 인하여 보디베라에게 넘치는 복을 허락하지 않으셨던가? 요셉의 억울함은 다른 누구도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만은 아실 일이다. 그런데 어찌 그가 이러한 모욕을 당하고 감옥에 떨어지도록 두셨던 걸까? 이 이야기의 끝을 아는 우리는 답을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셉이 감옥에 갔던 그 순간, 모든 오해를 재처럼 뒤집어쓴 그 순간, 그가 알 수 있는 게 하나라도 있었을까.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요셉의 인생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고난들은 무엇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놀라운 회복과 상승이 기다리고 있음을, 모든 이야기를 읽은 우리들은 다 안다. 다만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의 이야기가 드라마틱하게 낮아졌다가 높아진 해피엔딩 스토리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화려하고 눈부신 성공에 가려진 그의 어두운 시간을 조금 더 주목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 감옥에 오기 전 요셉은 이미 그런 시간을 보냈다. 형들에게 배신을 당해 구덩이에 빠져 있던 시간과 이집트로 끌려가던 그 시간동안 그는 이해되지 않는 시간들을 보냈다. 그리고 무언가가 조금은 풀리는 듯 보였던 그 시간에, 이해되지 않는 일이 그의 삶에 다시 한 번 일어났고 요셉은 이 일을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속수무책으로 찾아오는 고난의 시간. 요셉이 당해야 했던 일과 끝을 모른 채 견뎌야만 하는 이 시간을 묵상하면서 나는 그가 어떤 심경으로 그 시간을 보냈을지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나 자신도 이런 시간을 보냈을 때가 있었으며, 어쩌면 현재도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만 같다. 그저 기다려야 하고, 아주 긴 것만 같은 그 시간을 그럴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버텨야만 한다. 뭐 힘들었다는 말 이외에 다르게 할 말이 없는 그런 시간이다.


그가 감옥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알 수 없다. 요셉은 여러 가지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고 하나님과 씨름하는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그 시간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시간이었다. 자신에게 모든 것을 다 맡길 정도로 총애했던 요셉의 배신이 믿기지 않았던 보디베라는 그를 당장 죽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일을 허락하실 리 없다. 대신 그는 감옥에 갇힌다. 그리고 그 감옥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땅바닥에 붙어서 죽은 듯 보내야 하는 곳이 결코 아니었으며 하나의 ‘세상’이었다. 보디베라의 집에 있는 그 감옥은 정치범들, 말하자면 파라오의 곁에 있던 아주 높은 관료들이 왕을 반대하거나 위협한다는 죄명으로 갇히던 곳이었다. 경호대장의 특별 감호를 받는 의미로 보디베라의 집에 있는 감옥에 갇히는 것이다. 요셉에게는 가장 가까운 감옥이 그 감옥이었을 것이지만, 요셉은 그곳에서 아주 특별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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