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때가 생길 때
20대 때는 바로 성과 나지 않는 것들이나 나의 능력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은 쓸데없는 것이라고 치부하며 살았다. 그래서 삶이 공허하고 외롭고 허전했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쓸 데 있는 것보다 쓸데없는 것을 할 때 즐겁고 재밌고 영혼이 차오르는 법이라는 것을 요 근래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깨달았다.
얼마 전 참여했던 독서 워크숍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핸드폰과 인터넷 없이 3개월 동안 지낼 수 있나요?"
나는 질문을 듣자마자 속으로 생각했다.
'절대. 절대 불가할 것 같은데. 가능한 사람이 있을까?'
기억을 더듬어보니 인터넷과 핸드폰이 안 되는 상황에서 백일 가량의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2010년 네팔에서였다. 가족들과 전화를 하려면 30분 걸어 나가서 언제 출발할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려야 했고 한 시간가량 쉬지 않고 덜컹이는 버스를 타고 나가서 돈을 내고 국제전화를 할 수 있었다. 그때는 스마트폰도 없었을뿐더러, 그 당시 네팔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발전이 느린 상태였기도 했지만 내가 지냈던 곳이 시골 중에 깡시골이긴 했다. 잘 다니던 대학교 1학년 2학기를 중간에 휴학을 하고 나는 네팔에 갔다. 그때 모두가 그랬다. 지금 네팔을 왜 가냐고. 그거야말로 시간 낭비 아니냐고. 성과가 나지 않는 것들은 모두 쓸데없는 것이라고 치부하며 살던 내가 갑자기 휴학을 하고 네팔로 가겠다니 주변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공강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고 과제를 하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지냈던 나였기에 갑자기 떠나는 네팔여행은 모두에게 황당함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 핸드폰과 인터넷 없이 너무도 잘 지냈다. 왜 그렇게 잘 지낼 수 있었을까 생각을 해보니. 백여 명의 아이들과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을 해서 같이 먹고 예배를 드리고 밖에서 뛰어놀기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그냥 앉아서 이야기를 하며 하루하루를 지냈다. 그렇게 핸드폰과 인터넷 없이 하루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그때 기억이 떠올라서 나는 대답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만, 저는 가능한 전제조건이 있어요. 함께 지낼 사람들만 있다면요."
선생님은 이 질문을 통해 본인이 가장 가치를 두는 것이 드러난다고 하셨고 나는 깜짝 놀랐다. 평소에 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인간은 별로인 존재라고 생각해 왔다. 별로라고 생각하는 존재와 함께 하기보다 외롭고 힘들어도 혼자인 게 낫다고 생각해 왔는데 나의 무의식은 사람들을 그리워하고 원하고 있었다.
네팔을 다녀와서 복학을 했고 기말고사를 치르고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나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휴학하면 안 돼? 경마선수가 되고 싶은데 나이가 딱 지금이 마지노선이야."
"그 쓸데없는 거 할 생각 하지 말고 학교나 열심히 다녀. 엄마 하루라도 젊을 때 졸업해. 뚝."
그때 쓸데없는 걸 했더라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 마음 한편에 있는 나의 미련이다. 경마선수.ㅎㅎ
그 이후로 경마장에 가본 적도 없고 일부러 가지 않는다. 그때의 미련이, 아쉬움이 아직도 쓰라릴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