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간 옷을 사지 않기로 했다.

퇴사자의 일상 회복기

by 그레이스
100일간 옷을 사지 않기로 했다.
대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충분히 소비하고
누리는 것에 집중하기로 한다.




필요한 것이 생각나면 바로 구매를 눌러버리는 타입이었다.

한밤중, 아침... 가릴 것 없이 나의 눈과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것들에 중독되어 머릿속에 '이거 필요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스치면 옳다구나 하고 고민 같은 것 없이 바로바로 사들였다. 늘 나를 따라다니는 SNS 광고를 보고 꽤 비싼 고가의 화장품이나 다이어트 식품을 할부로 긁는 경우도 많았다.


집에는 단가가 5만 원이 넘지 않는 고만고만한, 쓸데없는 물건들과

6개월 할부를 감당하며 사들인 나를 치장하기 위한 것들로 넘쳐났다.

'내가 이렇게 힘들게 회사를 다니는데 이 정도는 사도 되지'라는 감정적인 소비는 급기야 맞지도 않는 옷을 살 빼면 입는다는 명목으로 사들이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작년 여름에 산 한 사이즈 작은 블라우스는 여전히 입지 못한다.)




회사에 다닐 때도 자율복장이라 정장을 차려입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집에 있으며 갖춰야 할 '동네룩'은 또 다른 차원이다.

일명 '꾸안꾸'- 꾸미지 않았지만 후줄근해 보이지 않기 위한 스타일이 필요하다.

부드러운 니트 재질의 원피스라던지, 차분한 톤의 가디건이라던지.. 나 같은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옷들이 보면 볼수록, 새록새록 생겨난다.


최근 2년간 적금 들듯이 차곡차곡, 10kg 정도 불어난 몸을 감추기 위해

루즈핏의 '꾸안꾸'룩을 장만하겠다며 며칠 동안이나 온라인 쇼핑몰을 파고들었다.

마침내 몇 벌의 원피스를 장바구니에 담고 결제 버튼을 누르려는데 여느 때와는 달리 마음이 무거웠다. '이 정도는 사도되'라는 마음보다 맞지 않는 옷들로 가득 찬 옷장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결제를 미루고 옷장을 열었다.

썩 예쁘게 맞지는 않지만 입을 만한 옷들이 여러 벌이다.

니트 원피스 2벌, 니트 케이프 2벌, 니트 치마 2벌, 상의 2벌, 라운지 원피스 1벌 등 당장 사지 않아도 될 정도다. 다가 지금 막 사려던 옷과 거의 비슷하다.


거의 10벌 가까이 되는 옷에 비슷한 스타일의 원피스가 더 추가된다고 생각하니 사고 싶은 마음이 쏙 들어갔다.


장바구니를 삭제하고 옷장에서 찾은 옷들을 보이는 곳으로 꺼내놓았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12월 31일까지 100일 남짓 남았다.

나는 22년 12월 31일까지 옷을 사지 않기로 했다.

대신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충분히 소비하고 누리기 위한 노력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하나둘씩 내 마음에 드는 핏을 찾아서 운동도 하고 몸에 좋은 음식을 천천히 먹는 습관을 들여보려고 한다.

100일이 지나 옷장 안에 있는 모든 옷을 다시 입게 되길 기대하며.

멈춤의 시간.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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