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손을 놓지 않을게요

2025

by 그레이스

1. 고백하자면 나는 좋은 딸이 아니다. 엄마에게 살갑지도, 따뜻하게 대하지도 못한다. 안부 전화를 기다리게 만드는 무뚝뚝하고 차가운 딸이다.


2. 불만이 많았다. 어린 시절 나에 대한 잣대가 높아 매일 혼내는 엄마가, 툭하면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엄마가 좋았던 적이 별로 없었다. 팍팍한 살림에 힘들었을 엄마의 마음이야 나와는 상관이 없었다. 결혼하고 신혼집을 친정에서 멀리 얻을 정도로 철없는 내 마음이 그랬다.


3. 일하는 나를 위해 10년을 손녀를 키워주고도 고맙다는 소리보다 볼멘소리를 더 많이 들은 엄마는 내가 퇴사한 후에도 여전히 주말이면 먹을 걸 싸들고 집에 온다. 수박을 먹기 좋게 잘라 통에 담고 감자를 삶아서 이고 지고 온다. 손녀입에 수박을 넣어주고 나에게도 슬며시 수박이 꽂힌 포크를 내민다.


4. 이제 70대가 훌쩍 넘은 우리 엄마는 너무 작아져버렸다. 나만 하던 키가 손녀딸만 해졌다. 등도 작아지고 힘도 빠져서 천천히 걷는다. 짜증도 내지 않고 화도 내지 않는다. 대신 어린애처럼 더 많이 웃는다. 더 많이 웃는 엄마를 보는 난 왜 더 속상한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5. 오랜만에 친정집에 다녀왔다.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씩을 사서 걷는데 엄마가 팔짱을 꼈다. 나는 엉거주춤 팔을 내어주고 걸었다. 집에 가는 버스를 같이 기다린다. 목적지까지 가는 버스가 왔는데 저건 돌아간다고 다른 번호를 타란다. 딸내미랑 헤어지기가 싫었는지. 못 이긴 척 버스 세 대를 보내고서야 차에 탔다. 차가 출발할 때까지 창 밖에서 엄마가 손을 흔든다. 작고 작아진 엄마가. 웃는 듯 마는 듯, 묘한 표정으로.


6.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눈물이 났다. 팔짱 낀 손을 빼서 잡아줄걸. 그깟 어린 시절 억울함이 뭐라고 아직도 난 선을 긋는가. 작고 작아진 엄마에겐 내 손이 필요했는데. 그 작아진 뒷모습이 내내 눈에 밟혔다.


7. 꼬맹이 시절 엄마 손을 잡고 종종걸음으로 다녔던 동네길을 걷고 싶다. 이제는 나보다 작아진 엄마 손을 잡고, 엄마의 속도대로 천천히. 동네 둘레길을 걷고 엄마가 좋아하는 중국집에서 물만두를 먹고 버스 열 대를 보내고 집에 와야지. 엄마 손을 놓지 말아야지. 잡은 손을, 놓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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