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우리 사이 무슨 사이

엄마의 유산

by 꿈꾸는 엄마

살갑거나 다정한 성격이 되지 못한 것은 참 죄스러운 일이다.

먼저 안부를 묻거나, 별 중요 하지 않은 이야기도 부담 없이 떠들어 될 수 있는 넉살 좋은 성격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무작정 말을 줄여 실수하지 않으려 몰두했던 지난 날들이었다.

제대로 된 수다를 경험하지 못했다.

어쩌면 후자가 훨씬 어려운 일이기에 세상 모두가 침묵을 강요하는 격언을 늘어 놓는지도 모르겠다.


가까운 사람들에겐 늘 한 발씩 느리게 다가간다.

덕분에 늘 받기만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내가 좀 더 다정한 사람이었다면 가까운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안 덜 외롭지 않았을까. 더해서 조금은 살아갈 용기를 내어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죄책감마저 느껴진다.

그러니깐 내가 조금 더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딸이었다면 나의 엄마도 사는 동안 덜 외롭고 더 살 맛 났을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랬다면 내가 이렇게 엄마를 그리워조차 하지 못하는 못난 딸자식이 되지도 않았을 거라고.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내 근간이 뿌리째 흔들린다' 라는 것의 문맥적 뜻이 무엇인지 날카롭게 실감했다.

15년 전 아빠가 돌아가시고, 이젠 엄마까지 세상에 없으니 나의 존재를 확인받을 수 있는 통로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의미다.

친가 쪽이든 외가 쪽이든 평소 돈독한 관계를 두고 사는 친척들이 없다 보니 더욱 그랬다.




내가 태어난 날이 언제라고 했더라?

둘째가 걸음마가 늦어 걱정하던 나에게 엄마는 너도 그랬다고 했던가, 너는 그렇지 않았다고 했던가?

심지어 나는 평생을 내 생일을 주민등록 상의 6월 26일로 두고 살았는데, 어느 날인가 엄마가 내 생일을

6월 25일로 착각을 하기에


"내 생일은 26일이야, 엄마." 했더니

"아닌데... 주민등록을 하루 늦게 한 것 같은데..." 하다가 대화가 끝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정말 내가 태어난 날이 언제인지, 나는 이 중차대한 일을 왜 더 묻지도 않은 채 대화를 마무리했던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정말 언제 태어났단 말이지?


더 이상, 그 누구에게도, 확인할 길이 없다.

바로 그 지점에서 나는 맥없이 사무치고 마는 것이다.


뿌리 없는 나무는 무엇으로 지탱해야 할까.





다행이다.

같은 뿌리에서 영양분을 공급받고 무럭무럭 자란 내 형제. 위로 두 살 터울의 오빠가 있다.

엄마가 세상에 존재했다는 증명. 하늘 아래 단 둘.


오빠는 20살 이후 지금까지 20년 넘게 객지로 나가 생활한 탓에 나와 형제애를 쌓기엔 물리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한계가 있었다.

아니, 사실 그보다는 애당초 둘 다 곰 살 맞은 성격도 아닐뿐더러 각자 자기 살 길 찾아가느라 서로를 살필 여력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솔직할 것이다.

그렇다고 둘 사이에 원망이나 서러움이 있어 등을 지고 사는 사이도 아니니, 문제 될 건 없다.

뜨겁지고 차갑지도 않은 적당히 무관심한 사이.

그것이 오히려 고마웠다.


서로의 안부를 서로에게 직접 묻는 경우도 드물었다. 엄마를 통해 사정을 알아가는 정도로도 충분했다.

엄마는 오빠에 대한 서운한 점이나 불만을 나에게 풀어내며 어지러운 당신 마음을 정화했고, 그로써 나는 딸자식의 도리를 어느 정도 다하고 있다고 과도하게 자신했다.


아마 엄마는 오빠와도 역시 나의 일신에 대해 폄하하며 날 깔보는 말을 나눴을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애를 셋이나 낳아 키우는 것도, 더구나 그중 아들 하나 없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들 낳으려 시도하다 실패한 것이라고 나의 출산 의도를 마음대로 폄하하기도 하셨는데, 나도 굳이 그렇지 않다고 해명하지 않았다.

그건 엄마가 아니라도 그동안 숱하게 남들에게 들어온 무례한 의구심이었고, 일일이 대꾸할 필요도 없는 완벽한 거짓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내버려 두거나,

"그러게 말이에요~" 하며 동조하는 척 웃어넘기면, 그들은 '그럼 그렇지' 하다가 오히려 나를 위로하고 두둔하려 들기까지 했다.


엄마 역시 그런 식이었다.

하지만 엄마에게 그렇게라도 안쓰러움을 받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엄마에게 어떤 식으로든 응석을 부리는 사치를 누릴 수 있어 좋았다.

내 아이들에게도 남편에게도, 나도 날 걱정하는 엄마가 있다고 장난스레 말하고 으스대던 날들이 좋았다.


"나도 우리 엄마 있거든!"





그러나 엄마가 돌아가신 후 오빠와 나와 관계는 의지와 의무가 두서없이 난립했다.

엄마가 남긴 빈 공터를 내려다보며 서로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도 못한 채 당황해했다.

세상에 핏줄이라고는 단 둘 뿐이라는 사실이 위안임과 동시에 부담이었다.


우리 남매는 연인사이 그렇다고 친구사이, 부모자식 사이, 그 어떤 관계와도 유사하지 않았다.

서로를 실질적으로 책임질 수도 의지할 수도 없는 관념적인 관계에 가까웠다.

그냥 내가 아는 그곳 어디쯤에서 아무 탈 없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고맙고 더 이상 바랄 것도 없는 사이.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는 사이.

그저 존재만으로 충만한 사이.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우리만의 감성과 고통과 그리움을 공유한 유일한 사람이기에 섣부르게 거리를 좁여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간절히, 지금 이대로 보존하고 보호하고 싶은 사이.


힘들게 가족을 이룬 오빠도 이미 그쪽 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익숙하고 마음 편할 테니, 함부로 내가 끼어들어 부담 주는 동생이 되고 싶지 않았다.

우리에겐 이미 각자의 가족이 더 소중해져 버렸다.

아쉽고 서운하지만 당연한 것이다.


그럼에도 힘들면 제일 먼저 자기를 찾아오라는 오빠의 말이 마냥 공허하게만 들리지 않았다.

그런 말을 자연스레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 걸 알기에, 그런 말을 하는 오빠의 노력이 고마웠다.

오빠였지만 얼마간은 동생 같은 면면이 있어서, ‘철들었네’ 생각하다가도 ‘오빠는 오빠인가 보네 ‘ 멋쩍었다.


엄마가 남기고 간 적지 않은 유산을 상속받는 과정에서도 오빠는 나를 서럽게 만들지 않았다.


살아생전 엄마는 역력히 남녀차별을 했으며, 아들 딸 구별 지어 대하셨다.

내가 그것에 별다른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고, 나 죽으면 부동산이며 보험이며 오빠에게 몰아주고 싶다던 엄마가 전혀 야속하지 않았다고는 못하지만, '내 팔자거니' 욕심내지 않았다.

여러 사정으로 엄마에게 오빠는 늘 아픈 손가락이었다.

나이 50세가 다 돼 가는 오빠가 뭐가 그렇게 애잔하냐며 엄마에게 핀잔을 주며 답답해하기도 했지만, 평생을 그런 마음으로 살아온 저 늙은 여자의 마음을 돌려놓는 건 불가능하다고 단정했다. 나 하나 인정하고 넘어가면 될 일었다.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엄마 돌아가시고 엄마가 남긴 재산과 금융거래를 오빠와 같은 자리에 앉아 확인했다.

욕심나지 않았고, 욕심내면 안 된다고 다짐했다. 남편과 새언니가 겉으로나마 그 부분에 대해 관여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준 것은 지금 와 다시 생각해 봐도 고마운 일이다.

어쩌면 수십억의 자산이 아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것마저 엄마에게 감사한 일이다.


지저분하게 돈으로 오빠와 의 상하고 싶지 않았고, 어쩌면 어느 정도 오빠를 믿는 바도 있었으리라.

엄마 살아 계실 적부터 오빠는 엄마의 유산은 무조건 나와 반씩 나누리라 호언장담했기 때문이다.

엄마 돌아가신 후 오빠는 그 말이 변함없음을 재 확인해 주었다.


실상 유산 상속은 자녀 1인이 단독으로 처리할 수도 없게 되어있었고, 오빠와 나는 은행업무며 보험업무를 함께 진행해 나갔다.

사망진단서, 사망자 기준 가족증명서, 기본증명서, 인감증명서 등을 지참하고 위임장 작성에 서명, 서명, 또 서명…

집으로 돌아와서도 중간중간 빠진 서류를 보충하여 우편으로 보내기를 여러 번.


엄마가 돌아가시고 한 동안 엄마가 이뤄 놓은 업적을 확인하고 나누고 처리하는 일에 정신이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 엄마가 눈 돌아가게 많은 자산을 남기지 않은 것에 다시 한번 진심으로 마음깊이 감사해했으며, 꾸역꾸역 버리지도 쓰지도 못한 채 모아 놓은 오래되고 허름한 엄마의 물건들에 허무해지기도 했다.

사진첩과 엄마의 핸드폰만 집으로 가져오고, 나머지는 남김없이 버렸다.

내가 엄마의 모든 흔적을 이고 지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미련없이 버렸다.


나는 많이 남기지 말아야지. 남은 사람들이 나의 남은 흔적으로 괴로워하지 않도록.


그럼 나는 무엇을 남겨야 하지?


엄마는 돌아가시고도 나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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