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신잡담
어느 날, 내 책상 위로 노란, 작고 고운 귤 4개가 올망졸망 가지런히 올라와있었다.
마음씨 좋은 사무실 식구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번갈아가며 먹을거리를 동료들 책상 위에 남몰래 올려놓곤 했는데 모둠 떡 두 덩어리, 초코파이, 구운 계란에 바카스… 메뉴도 다양하다.
누가 올려놓았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면 나이가 20살 가까이 많은 선배들이 나를 보고 싱긋 웃으신다.
“감사합니다” 속삭이듯 말한 뒤 귀한 간식을 가방 안에 소중하고 집어넣어 그대로 집으로 가지고 온다.
독서모임에서도 한 번씩 사탕이나 젤리 과자등을 나눠주면 종류별로 3개씩은 챙겨 가방에 잘 넣어 집으로 가져온다.
그리고 아이들 앞에 짠 하고 내놓으면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아이들은 와, 하고 탄성을 내지른다.
그 모습이 나는 또 너무 좋아서 다음번을 기대하곤 한다.
못 먹이고 키우는 것도 아닌데, 어디서 챙겨주는 간식이 그렇게 반갑다.
다른 물건도 좋은데 먹는 것만 못하다.
얻어온 간식을 아이들에게 먹일 생각을 하면 괜히 마음이 애잔하고 애틋해진다.
나라고 어디 못 먹고 자란 아이던가. 먹는 걸로 서러워 본 기억이 없는데도 왜 이런지 모르겠다.
세대를 거슬러 배곯던 서러운 DNA 가 숨어 있나.
구질구질 구차해 보일지도,
없이 자란 티 낸다 핀잔을 받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디서 맛있고 귀한 음식을 나눠주면 아이들 먹일 생각이 먼저 들어 마음이 든든해진다.
좋은 옷 입히고 유행하는 물건을 아이들 손에 쥐어 줄 때보다 맛있는 음식이 아이들 입에 들어갈 때 몇 배는 더 큰 만족감이 든다.
가을날 다람쥐가 도토리 입 안 가득 물어 와 여기저기 챙겨두고, 겨울 앞에서 얼마나 마음이 든든했을까.
언제까지 언제까지 이렇게 든든하고 배부르게 먹이고 재울 수 있기를.
혹시 그러지 못할까 두려워지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남편이랑 둘이 나란히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날도 있다. 어디 일가족이 생활고를 비관하여 삶을 끊었다거나 가장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뉴스를 보면 일면은 이해가 된다며 서로의 빈 술잔을 채워주는 날.
가끔은 넌지시 남편에게
"고마워, 덕분에 배부르고 등 따습게 살아"
진심을 전해본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이처럼 애잔한 일이다.
내놓고 드러내는 자굴심과
기필코 꺾이지 않을 자존심을 한 가슴에 이고 지고
조심조심 살아가는 것이 부모의 심정이다.
그런데 이 조심하는 마음이란 것이 아이를 향하는 쪽이라기보다 나를 향하는 쪽에 가깝다.
내가 나를 조심히 다뤄 나를 온전히 지켜내어 궁극적으로 내가 지켜야 할 아이들을 지켜 내는 일.
그러니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언제나 내 쪽을 보고 나아가야 할 일이다.
너무 모자라지도 지나치지도 않게.
내 과한 힘에 아이들이 짓눌리지 않게.
내 약한 힘에 아이들이 정처 없이 떠다니지 않게,
내가 날 잘 키우고 조절하고 간수하여 아이들을 잘 먹여 살려야 한다는 각오로.
오늘도 열심히 돌아다며 먹이를 모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