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하게 순해서_

일신잡담

by 꿈꾸는 엄마

드러내고 싶지 않은 나의 사악한 이면.

결국은 내가 망치고 말 것 같은 두려움.


감히 내 힘을 거스를 수 없는 최약자를 마주하는 동안

내가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가지게 되는 우월감.


내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을 생명을

무참히 유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식.


찍 소리 한 번 못하고 단 번에 제압되고 말 저 나약한 존재가

부담스럽다, 아니 두렵다.


내 속에 있을 잔혹함이 두렵다.


무리하게 순한 것이 무섭다.




특별히 강아지나 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들에게 트라우마가 있거나, 안 좋은 기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보고 있자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집으로 데려와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마당이 있는 집, 앞마당에서 자유롭게 자라고 있는 '시고르자브르 종' 새끼를 보자면 어쩜 저렇게 순박하게 생겼을까 조물조물 만져보고 싶어 안달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역시 내 방 침대 이불 안으로 들여놓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던 내가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와 소중하게 키워보고 싶다는 마음을 먹은 적이 한 번 있었는데

둘째까지 낳고 키우다가, 어느새 아이 둘이 꼬물꼬물 하던 아기 시절을 벗어났다고 생각하니 괜히 서운한 마음이 생겼을 때였다.

그렇다고 그런 모습 한 번 더 보자고 무턱대고 셋째를 낳을 수는 없는 일이라 갓 태어난 어린 강아지를 데려와 위안을 받고 싶은 불손한 마음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그러지 못했다.

셋째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막둥이는 세상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 애교쟁이로 온 집안에 침묵의 시간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런 막둥이마저 어느새 초등학생이 되었으니 오래전 이야기다.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고 있는 동서네는 초코색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반려견 중에 가장 예의 바르고 가장 인간에 덜 의존적인 개다.


동물들도 오랫동안 한 공간에 지내오면서 생활 습관이란 것이 배어있기 마련이다.

때문에 함부로 반려동물에게 다가가 아는 척하지 않는 편이다.

동서네 강아지, '초코' 에게 역시 그랬다.

그렇게 나와 초코는 어느 정도 내외하는 관계였다.


그러던 어느 날 동서네가 장기간 여행을 가게 되면서 초코를 우리 집에 이틀 정도 맡겨 두게 되었는데,

워낙에 조용한 반려견이라 특별히 신경 쓸 것이 없었고, 아이 셋이 각자 맡은 바 임무를 다했기 때문에 내가 손 될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워낙에 먹는 량이 적고, 활동량도 적어서 잠깐이지만 내 마음을 애 쓰이게 하긴 했지만 최대한 편안한 장소를 제공하기 위해 내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다.


그전부터 강아지를 키우게 해 달라고 사정하고 협상을 하고 있던 우리 집 아이들은 완전히 '초코'에게 마음을 뺏겼다. 하지만 아이들은 워낙에 강경한 반대 입장을 고수하는 나에게 쉽게 반려견을 키우자고 하지는 못했다.


아이들의 그 애달픈 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라 마음이 많이 흔들렸지만, 그렇다고 한 생명을 키우는 것을 그런 식으로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아이들의 손을 빌린다고 해도 결국은 생명을 책임져야 할 핵심 몫은 나에게 있기에 누구도 나의 결심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런저런 사유를 들며, <우리가 반려견을 키울 수 없는 이유>를 아이들에 브리핑하면서도

그런 사유가 모두 핵심을 비껴간 변명이란 걸 나만 잘 알고 있었다.


내 속의 잔혹함이 드러날 것 같은 불안함이 완전히 소멸되지 않는 이상,

나는 무턱대고 나약한 존재를 보호할 자신이 없음이다.


무리하게 순한 존재는 나를 두렵게 한다.

나의 문제인지 순한 존재가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아무래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되기도 한다.


이런 솔직한 글을 써도 되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보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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