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뛰어왔어

일신잡담

by 꿈꾸는 엄마


장마철이었다.

새벽부터 시작된 비가 아침이 되어도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더 사납게 휘몰아친다.

아이 둘을 야무지게 채비시켜 학교로 보내고, 막둥이도 겨우 유치원 차를 태워 보내면서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시각에는 이 비가 잦아들긴 바랐다.


첫째는 하교 후 공부방과 피아노 학원 두 곳을 돌고 저녁시간이 다 되어야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야속한 비는 저녁이 다 되어가는데도 여전히 그런 식으로 내리고 있다.

창 밖으로 내리는 비를 째려보며 상스럽게 불평하는 내 모습을 막둥이가 가만히 보다가

"엄마는 비가 그렇게 싫어? 엄마가 싫어하니깐 나도 비 오는 거 너무 싫다."

라고 한다.


아이고, 아니다 아니야.

비가 싫은 게 아니라, 이 비를 뚫고 올 큰 언니를 생각하니 걱정이 되어 그런다.

엄마 비 오는 거 좋아한단다. 아니 좋아했었단다.


그러다, 현관으로 반쯤 생쥐꼴이 되어 큰아이가 들어온다.


"엄마, 엄마~ 엄마, 나 왔어."


엄마 없는 사람 어디 서러워 살겠나.

말할 때마다 '엄마, 엄마." 안 부르면 말이 시작이 안 되는 모양이다.


"엄마, 엄마. 나 뛰어왔어."


"왜, 뛰어와. 비 오면 미끄러워서 넘어지는데."


아이가 급하게 가방을 내려놓고, 거실에 앉아 한숨을 돌린다.

그리고, 마저 이야기를 이어간다.


"엄마, 학원 마치고 집으로 오는데. 우리 동 앞에 엄마랑 아기랑 걸어오는 거야. 아이가 진짜 귀여웠어."


큰아이는 유난히 어린아이들을 이뻐한다. 밑으로 동생이 둘이나 있어도 진저리 나지 않는 모양이다.


"장화 신고 비옷까지 입은 아기가 엄마 손을 잡고 걸어오는데, 아기가 계속 엄마 손을 안 잡고 혼자 걸어가려고 하는 거야. 비 오는데." 큰 아이가 계속 말을 이어간다.


"아이가 걸음마 시작했나 보네."


"응. 근데 아기 엄마가 아기를 막 쫓아 가는데, 엄마 등이... 다 젖어 있었어."


아.


"엄마가 우산을 아기한테만 다 씌워줘서 아기 엄마 등이 다 젖어 있었어."


아무 말 없다, 큰 아이와 내 눈이 마주쳤다. 나는 가만히 큰 아이의 얼굴을 쳐다봤다.


"근데, 갑자기 엄마가 막 보고 싶어서. 그래서 막 뛰어서 집에 왔어."


하며, 큰 아이가 웃는다.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와 그 엄마의 모습을 고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을 큰 아이의 마음이 너무 예뻐서.

그 순간에도 날 생각해 주는 큰 아이의 사랑이 너무 고맙고 설레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내가 이 예쁜 아이의 엄마라니.


-어느날의 일기장 속-




나는 어린 시절부터 어린아이들을 유난히 좋아했다.

친가나 외가 쪽으로 오빠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촌들이 없어, 언제 어디서든 나는 가장 큰 언니고 누나였다.

동생들도 유난히 나를 잘 따랐고, 그런 동생들이 나는 너무 귀여웠다.


어쩌다(?) 사랑하고 결혼까지 한, 이 남자도 아이들이 유난히 잘 따르는 사람이었다.

밑도 끝도 없이 "우리 아이를 한 네다섯 쯤은 낳아야 되지 않겠어?" 하던 시절도 있었다.

결국은 이 저출산 시대에 셋이나 낳았으니 목표를 반쯤은 달성한 셈이다.


어렵게 가진 첫째와 달리 둘째 셋째는 예고도 없이 찾아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낳고 키우면서 내가 받은 감동은 도무지 말로 표현이 안 될 만큼 황홀하고 행복했다.

우스갯소리고 '육아가 체질'이라는 말을 할 만큼 나는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말도 못 하게 만족스러웠다.

나의 지나온 온 생애가 이 날을 위해 갈고닦아진 것만 같았고, 앞으로 나의 온 미래도 이 아이들을 위한 시간일 것이라 생각했다.

아이들을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일조하고 싶었다.

누군가는 우려하기도 했다.

온전한 네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아이들을 뺀 나의 온전한 삶이란 것이 가능하긴 한 것인지 반문했다.

결국은 후회하고 말 것이라고 안쓰러워하는 그들의 마음엔 어느 정도 괘씸함이 배어 있는 것 같아서 더 이상 말 하진 않았지만, 결국은 아이들을 위해 더 성숙해질 나로 대신 할 수밖에 지금으로선 별도리가 없다.




우리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을 보고 있자면, 거역할 수 없는 희생정신이 무한대로 뻗친다.

온몸과 정신을 나에게만 의지하고 있는 아이들의 눈빛은 사랑스럽다.

내 목에 제 양팔을 감싸고, 얼굴을 비비고 관심을 바라는 아이의 말간 표정이 나를 어른으로 만든다.

특히, 나 아니면 옴짝 달짝 못하는 갓난아기를 돌보고 있으면 기필코 이 아이를 지키고 말겠다는 과도한 모성애가 나를 휘감아 재낀다.


이 세상,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어미는 무수히 보았어도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어린아이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아이들은 모두 제 부모를 조건 없이 무한대로 사랑한다.

내가 그런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눈물 나게 영광이다.

그러니 바르게 살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부모 외에 보고 배울 것들이 많아지고 따라서 그 마음이 어느 정도 사라진다고 해도, 그 잠깐의 기억으로 나의 남은 온 생을 데우고도 남는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빨리 달려왔다는 이 아이는 벌써 사춘기가 되어, 나를 다른 방식으로 성장시키고 있다.

여전히 동생을 먼저 안아주면 입을 삐죽이는 그 모습이 감사하고 사랑스러워 마음이 놓인다.


너의 미래를 욕심 내지 않을게.

그러니 이대로 건강한 아이로만 자라다오.



이런 아이가

나에게는

둘이나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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