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게가 맛집이랍니다.

일신잡담

by 꿈꾸는 엄마


[우리 가게가 맛집이 되었다.]


세상살이 예상불가다.

그러니 반드시 겸손해야 한다.





2022년 한 해가 끝나갈 무렵.

애 셋 키우는 것이 녹록지가 않다.

외벌이 가장의 어깨는 갈수록 무거워진다.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갈수록 늘어간다.


젊은 시절엔 내가 나를 감당하기 힘들 만큼 무턱대고 들이대다 내팽개쳐져도 기개가 넘치더니

나이가 들수록 모든 것이 최악으로 내 달리게 될 상상이 먼저 떠올라한 발 뒤로 빼게 된다.

없던 일을 만들고, 있던 일들이 커질 거란 생각만으로도 일만이천봉 등반 하고 내려온 기분이다.


남편은 일을 벌이는 쪽이다.

먹고살아야 하니 무슨 수를 써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을 벌여 놓으면 수습은 누군가를 하게 된다는 식이다.

그렇게 나를 애써 일으켜 세우려는 남편이 얄미우면서도 고맙다.




시동생과 함께 하는 사업이 잘 풀리지가 않아 한숨만 내 쉬던 시기였다.

뭘 해서 먹고살아야 하는지, 그 생각으로 머리가 지긋 거릴 때 집 앞 붕어빵 리어카 앞으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리어카 앞 쪽에는 <기계와 장비 무상 대여>라는 문구와 함께 연락처가 적혀있었다.

남편은 바로 전화를 걸어 붕어빵 장사를 할 수 있는 절차와 비용을 문의했고, 바로 나에게 알렸다.

남편은 진지했고, 신속했다.

붕어빵 리어카를 놓고도 장사할 장소를 못 찾아 다들 망설인다는데, 우리는 ‘우리 가게’ 앞에 두고 할 수 있으니 뭐가 문제냐고, 남편이 나를 설득했다.

시동생도 마음이 동했는지 오케이 했다고 하니, 나도 별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붕어빵 장사가 시작되었다.

참, 세상살이 예상 밖이다.




겨울바람은 점점 더 사나워졌고,

오전엔 돌아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는 골목이라, 보통 점심쯤부터 붕어빵 장사를 시작했다.

남편과 시동생은 일이 들어오면 본업을 하러 가야 하니, 그런 날은 내가 나가 붕어빵을 팔아야 한다.

처음엔 붕어빵 속에 들어가는 팥과 슈크림 량이 들쑥날쑥이고. 빵이 익은 건지 어쩐 건지도 모르겠고.

겨우 손님 두 팀 대기하는 걸로도 숨이 차올랐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다.

시간을 내주면 반드시 실력으로 보상받는다.

붕어빵 수백 개를 굽다 보니 어느 정도 손에 익어 마음의 여유까지 생겼다.

손님들과 수다도 떨어보고, 거기다 단골까지 생겼다.

본업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과 시동생까지 붕어빵 장사에 합류하면 붕어빵 리어카 앞으로 우리 셋이 돌아가며 굽고 담고 팔고, 재료를 채웠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했고 애달파했다.


남편의 주 특기는 재료를 아낌없이 듬뿍듬뿍 넣어 붕어빵을 빵빵하게 굽는 것이었다.

시동생의 특기는 노릇노릇 앙고 터진 곳 없이 말끔하고 예쁘게 붕어빵을 굽는 것이었고.

둘은 손 발이 척척 맞아떨어져, 고개를 들 새도 없이 붕어빵을 구워내었다.

정신을 차리고 허리를 세워보면 리어카 앞으로 손님들이 어디까지 줄을 서 서 대기하고 있었다.

신이 났다.

이러다 금방 부자가 될 것 같은 웃긴 착각이 들었다.


그런 날이 며칠간 이어졌다.

지역 인터넷 카페에 우리 붕어빵이 맛집이란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단다.

우리 붕어빵집이 '지금 장사를 하고 있는지' 서로 정보를 묻고 답하기도 했다.

'어디 붕어빵 집'과 비교하면서 우리 붕어빵 맛이 최고라고 치켜세워주기도 했다.

제법 먼 거리에서도 이 붕어빵을 먹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기까지 온다는 손님이 있어,

우리조차 '이게 그럴 일인가?' 당황스러웠다.

재료야 만들어진 것 받아 쓰는 것인데 뭐가 그렇게 다르다고 아랫집 붕어빵집 놔두고

굳이 우리 가게 앞으로 몰려드는 걸까.


우리끼리는 역시나 재료를 아낌없이 써야 한다고 했지만, 나 혼자 생각으로는 젊은이들이 살아가려고 애쓰는 모습이 대견하고 짠해서 그런 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2개에 1000원.

누구는 저렴한 돈으로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간식이라 하고, 누구는 겨우 붕어빵 주제에 몸 값이 비싸다며 괜히 우리를 탓하기도 했다.

그럼 괜히 불뚝한 마음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냥 애써 웃어넘기는 재주도 알았다.

누구에게는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다가,

또 누구에게는 넣어 준 것도 다시 빼버리고 싶은 괘씸한 마음이 들어 그것을 억누르느라 애써야 하기도 했다. 그 잠깐의 장삿속에서 귀하고 서러운 마음들이 오락가락했다.

얼마쯤은 내가 어른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아 나쁘지만은 않은 기분이었다.



붕어빵을 굽고 파는 동안은 그야말로 무아지경이었다.

짜릿할 정도로 아무 잡생각이 나지 않았다.

몸으로 하는 노동의 위대함을 오랜만에 느꼈다.

어디 내세울 것도 없었지만 부끄러울 것도 없었다.


오로지 내 힘과 노동으로 정직하게 돈을 번다는 것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 새삼 알게 되었다.


더구나

겨우내 붕어빵 팔아 큰돈은 아니더라도 아이들 학원비까지 보탤 수 있었으니 더욱 감사한 일이었다.




붕어빵, 한 철 장사라 그 겨울이 끝남과 동시에 붕어빵 가게는 문을 닫았다.

다행히 그 뒤로 남편 하는 일이 조금씩 풀려, 다음 해 겨울은 붕어빵 장사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거기서 끝날 수 있었기에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불현듯 찾아온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감동과 깨달음도 덤으로 얻었다.


하기 싫은 일도 기꺼이 하는 거.

그런 일에서 조차 무언가를 얻는 거.

정직하게 먹고산다는 것의 자부심.

아무래도 내가 대단한 부자가 되긴 힘들겠다는 거.

정말 부끄러운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는 거.

먹고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

미안하고 고맙다는 마음.

다른 사람 시선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의 의미.

나의 자존감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 졌다는 의지.

더욱 겸손해져야겠다는 다짐.

더 추운 사람들의 손을 잡아 주고 싶다는 선한 마음이 나에게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의 안도.

세상이 더 따뜻해졌으면 좋겠다는 거룩한 기도.


그런 것들 말이다.



올 겨울, 붕어빵 파는 곳을 찾기가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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