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사정을 상상해 보는 것.

타인을 이해하려는 무리한 노력

by 꿈꾸는 엄마

국민학교 4학년. 짝지가 바뀌는 날.

나의 새로운 짝은 한 번도 말을 나눠 본 적 없는, 작고 조용한 여자 아이였다.

예쁘다고까진 할 수 없지만 귀여운 얼굴에 야무지게 머리를 묶고, 제 몸에 딱 맞아 단정하고 깔끔한 옷차림을 한 짝은 볼 품 없이 깡마르고 팔 목을 세 번쯤 접은 옷을 입은 내가 충분히 기죽을만한 상대였다.

하지만 내 짝은 내가 그 어떤 위기감이나 상실감을 느낄 새도 없이 먼저 납작 엎드렸다.


짝은 쉬는 시간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 외에는 자기 자리를 잘 벗어나지 않는 아이였기에 어느 무리에 섞이지 못하고 늘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나라고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그래도 나는 반에서 한 두 명은 마음이 반쯤은 맞는 친구가 있어 쉬는 시간이 부담스럽지만은 않았다.


짝은 쉬는 시간에 내가 내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을라고 치면, 내심 반가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다부진 표정으로 궁금하지도 않은 자신의 사생활을 나와 공유하려 했다.

“너는 뭐 했어?” 하고 그 아이가 물으면

“뭘?” 하고 나는 얼빠진 대답만 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짝은 언제나 나에게 친절하다 못해 관곡했다.

내가 글을 쓰다 잠시 지우개를 찾는 시늉만 해도 얼른 지우개를 내 앞에 대령해 놓는가 하면, 책상 위에 줄을 긋고 넘어오지 말라는 나의 엄포에 두 말 없이 순응하다 얼핏 넘어오기라도 하면 대뜸 핀잔을 주는 나에게 언제나 과하게 미안한 표정을 짓던 아이, 반대로 내가 금을 무시로 넘겨도 싫은 소리 한 번 없던 아이였다.

짝의 그 무리한 선()이 어린 나의 순수한 요망을 수시로 건드렸다.

나는 바로 그 사실이 찜부럭 한 것이었다. 도무지 짝의 그 순한 마음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괜히 훼방을 놓고야 말고 싶어 진다는 마음이 발동하면 억울한 마음까지 들었다.


"다 너 때문이잖아!"


조금만 불편한 상황이 벌어지면 모두 그 아이의 탓으로 돌리고 말았다.

내 마음에 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짝이 싫었다.

그렇다고 대 놓고 무리를 지어 그 아이를 괴롭히는 요망한 짓까지는 하지 않았다. 내가 그런 무리를 만들만한 힘은 없었기 때문일 텐데 돌이켜보면 다행한 일이다.


그런데 내가 짝에게 도무지 정을 주지 못하는 더 큰 이유가 따로 있었다.

그 아이에겐 내가 유독 견디기 힘든 불쾌한 냄새가 났다는 것이다.

아무리 봐도 못 씻고 살 아이는 아닌데, 매번 견디기 쉽지 않은 비릿한 냄새가 풍겼다.

그 당시에는 그 냄새를 '생선 비린내'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내가 성인이 되어 잠시 공항에서 일하던 때 살집이 큰 백인 외국인 남성에게서 풍기던 그 특유의 '암내'를 맡고 그것과도 매우 닮았다고 생각했다.

교실 창가에서 부는 바람이 그 아이를 스쳐 내 후각으로 날아오면 "윽" 하는 찌르는 듯한 비린 냄새에 속이 뒤틀릴 것만 같았다.

당시엔 왜 아무도 이 아이에게 나는 냄새를 눈치채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내 후각이 예민하다고 해도 그 냄새는 분명히 실체가 있었단 말이다.

누구라도 먼저 말을 꺼내주면 격렬하게 동의해 줄 것 같은데, 아무도 그 아이의 냄새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어쩌면 모두 나처럼 견뎌 내고 있었을까.


하지만, 결국 마지막엔 참지 못하고 짝에게 고백했다.


"너한테... 고양이 냄새가 나."


그리고 더 이상 그 아이에 대한 기억은 남아있지 않다.



시간이 많이 흘러, 내가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특히 신경 쓰는 여러 부분 중에 하나도 이 "냄새" 다.

날이 더우나 추우나 매일 같이 내 손으로 아이들을 씻겨재꼈는데.

큰 아이가 6학년, 둘째 아이가 5학년에 막 올라가는 순간까지 아이 혼자 목욕하는 것이 만족스럽지 못해

내 손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씻겼다. 심지어 양치까지. 치실까지 야무지게.

그러나 아이가 하나에서 둘이 되고 셋이 되니 힘에 부치기 시작했던 참에, 아이들의 요구에 못 이긴 척,

손을 놓고 아이들에게 샤워권(?)을 양도했다.

그러고 나서도 한동안은 코를 실룩거리며 냄새로 아이들의 목욕 상태를 체크했는데, 완전히 손을 놓지 못한 나의 극성에 아이들의 원성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아이들은 "엄마가 후각에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라고 불만 같은 섭섭함을 내비쳤다.

괜히 아이들까지 예민하게 만드는 것 같아 미안한 것도 사실이다.


아이들 뿐만 아니었다. 남편도 그런 나에게 은근히 불만이 많은 모양인데, 나도 억울하긴 마찬가지다.

냄새나는 걸 어쩌겠나. 거기다 내 아이들과 남편에게 불쾌한 냄새보단 향기가 나길 바라는 마음이 비난받을 일도 아니고.

솔직히 남편은 어느 정도 스스로 반성해 봄직하다.

유별나게 땀이 많은 남편은 언제나 샤워 시간 5분을 채 넘기는 일이 없다.

도대체 물을 끼어 얹는 수준이라 씻었다고 표현하기도 애매한데, 남편이 닦고 나온 수건에 쉰내가 나서 남편의 등을 향해 한참 동안 수치를 주기도 했다.

연애할 때는 자기에게 나는 땀냄새도 좋다던 내가 야속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수건을 삶고 빨아야 하는 건 내 몫이므로, 어쩔 수 없는 분노다.)


남편은 아무래도 자신에게서 난다는 냄새에 신경이 쓰였는지, 각종 냄새 제거용 샤워 제품과 바디 스프레이, 섬유 스프레이를 구입해서 사용하는 모양인데. 신통치는 않다.

(제대로 씻기만 하면 좀 더 개선될 텐데 말이다...)


남편은 너도 당해봐라는 식으로 나에게

“너도 냄새나거든!”

하며, 내 정수리에 코를 박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날 정말 우연히도 '생선냄새 증후군"이라는 놀림 같은 질환이 실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전적 원인에 의해 FMO3 효소가 기능을 하지 못해 몸에서 생선 썩는 악취가 나는 희귀 난치성 질환이다. 본래 명칭은 트리메틸아민뇨증이다.

이는 희귀 난치성 질환으로 근본적인 치료약은 없고 증상 완화를 위한 투약을 하는 것이 치료의 전부다. 다만 트리메틸아민(TMA)이 많이 들어 있는 계란, 우유, 콩, 양배추 등을 적게 먹고, 피부 산도(pH)의 균형을 맞춰 주는 전용 세정제를 쓰는 것이 증상을 완화하기 위한 한 방법이라고 알려져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생선 냄새 증후군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그야말로 몸에서 생선 비린내가 나는 것인데, 식습관 및 생활습관으로 생길 수 있고 유전적인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한다.

유치원 선생님들 사이에 원아들에게 나는 비릿한 냄새로 말도 못 하고 괴로워했다는 댓글을 보고, 섬뜩해졌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말끔하게 씻기고 나면, 반나절이 지나 이상하리만큼 시큼한 땀냄새인지 비릿한 물냄새인지가 감지되어 미저리처럼 킁킁거리던 내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동안 사들인 향에 관련된 제품들이 얼마쯤 될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상이 갈 것이다.

다행히 아이들이 "학교에서 친구들이 너한테 좋은 냄새난다"라고 했다고 하면, 그동안의 수고로움에 보상을 받는 것 같아 한시름 놓인다.

아무래도 나의 과민한 반응이란 것이 최근 결론이고, 천만다행이다.


그런데, 만약에 말이다.

초등학교 시절의 내 짝이 실은 '트리메틸아민뇨증' (아무래도, 생선냄새 증후군은 너무 원색적이라 사용을 자제하고 싶어 진다.)이었던 거면 말이다.

그럴만한 이유가 마땅히 없는 아이가 친구들 앞에서 자꾸 움츠려 들었던 이유가, 그것으로 인해 오랫동안 외면당해 온 과거 사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면 말이다.

굳이 나같이 잘 보일 필요가 조금도 없는 아이에게까지 아양을 떨어야 했던 이유가 모두 그런 것이었다면.

이 '희귀성 질환'은 근본적인 치료 방법이 없다니깐.

어디까지나 나의 상상일 뿐이라지만, 그 아이에게도 그런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던 것이고, 나는 그것도 모르고 못되게 굴었다는 것인데. 얼마나 미안한 일인지 모르겠다.

그 아이는 분명 잘 지내고 있겠지? 부디, 누구보다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길.


억지스럽게, 그야말로 맥락 없는 나의 이런 상상으로 어린 시절 짝의 사정을 헤아려보려는 내가 겸연쩍다.

그럼에도 이렇게 혼자서 남의 사정을 만들어 내서라도 이해해 보려는 것은, 두 번은 실수하지 않으려고.


딸들에게도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가정해서라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친구의 사정을 헤아려보자고 종종 권해본다.

그것은 더 착해지는 쪽이 아니라, 덜 나빠지는 쪽으로 가길 원해서이다.

나처럼 오랫동안 나직하고 진득하게 죄의식에 시달리지 않길 바라서.


내가 지금까지 냄새에 고통받는 이유가 어쩌면 그날의 원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과도한 자책.

이젠 좀 냄새에 대한 예민함과 죄의식에서 벗어나고 싶다.


사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도 오만이고 거만이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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