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놀리는 게 제일 재밌어요!]

by 그레이스

아이들은 별것도 아닌 걸로 티격태격 잘 싸운다. 어른들도 가끔 그렇지만.

덩치는 어른만 한 중학생들도 행동은 영락없이 갓 초등을 벗어난 모습이라 사소한 것에도 잘 삐치고 싸우고 또 금방 같이 논다. 어른들은 그렇지 않지만.


요즘은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이 그리 어렵지 않지만, 예전에는 반에서 약 60% 정도의 학생들만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래서 중3이 되면 내신 성적 관리가 발등의 불이 되고 비상이 걸리는 학생들이 있었고, 학원에서는 이들을 모아 인문계 진학 특별반을 만들기도 했다. 공부에 별 관심도 흥미도 없어 성적이 낮은 학생들을 모아 ‘특별’ 진학을 위해 ‘특별히’ 많은 수업을 하다 보니 아이들은 무척 힘들어했다. 남학생 6명으로 구성된 그 반은 별것도 아닌 일로 다투기도 하고 험한 말로 수업 분위기를 흐리기도 했다.

한 번은 조용히 문제를 풀어야 하는 시간에 한 두 마디 대화가 오가더니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나는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지금부터 ‘이상한 말’하는 사람은 100원씩 거두겠다”라고 무서운 표정으로 엄포를 놓았다. 순간 정적이 흐르고 내 조치가 효과를 발휘하는 듯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녀석이 손을 들더니

“샘, 예뻐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이건 무슨 상황이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어서 한다는 말이

“500원 낼게요.”

“그게 무슨 말이야?”

“이상한 말 하면 100원 내라면서요. 이상한 말 했으니까 500원 낼게요!”

“야 임마, 그거는 1000원 내야 하는 말이다.”

“맞다, 맞다. 완전 이상한 말 했으니까 1000원 내라.”

좀 전의 다투던 모습은 어디 가고 모두 원팀이 되어 나를 즐겁게 놀려 대기 시작했다.

나를 놀리는 데는 모두가 한 마음. 원팀. 나쁜 놈들.

그러나 내 외모를 가지고 놀려 대는 것에 기분 나쁘기보다는, 이 창의적 발상에 감탄이 나왔다. 이 녀석은 전에도 내 옷에 달린 레이스 장식을 보고 ‘선생님, 집에 커튼 많아요? 왜 옷에 커튼 붙이고 다녀요?’라고 말하던 녀석이다. 이렇게 기발한 창의력을 가진 녀석이 그 좋은 머리를 공부하는 데 쓰면 얼마나 좋을까?


다중 지능 이론으로 유명한 하버드대 하워드 가드너 교수는 인간의 지능을 언어, 논리수학, 공간, 신체 운동, 음악, 대인관계, 자기 이해, 자연 탐구의 8개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주입식 공부에는 영 재능이 없어 학교 성적은 바닥이지만, 기발한 순발력과 창의력은 충만한 이 아이들의 지능은 무엇으로 설명하면 좋을까? 가드너 교수가 이 아이들을 만난다면 이들의 지능을 어떻게 설명할까? 인문계 진학이 아슬아슬하고 학교에선 열등생으로 낙인찍힌 아이들. 그러나 주입식 공부 방법이 맞지 않거나 흥미가 없어서 공부를 안 했을 뿐 어느 날 갑자기 이 아이들이 흥미를 발견하고 공부에 돌진하면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를 놀려 먹을 때 쓰던 그 좋은 창의력으로 무언가를 성취해 낼 가능성 충만한 존재들. 그래서 원팀이 되어 나를 놀려도 적당히 화내는 척하며 넘어가 주었다.

그래, 내가 잠시 공공의 적이 돼 줄 테니 잠깐 웃고, 힘내서 열공해라.

마음으로 응원하며.


-에필로그-

한참 외모에 관심이 생기는 사춘기. 아이들은 내 외모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박씨전’을 공부할 때면 선생님은 언제 허물 벗고 예뻐지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허물 벗은 모습이 지금 모습이냐고 비꼬기도 한다.

채점 실수 등을 할 때 “어머, 실수했네. 얘들아, 선생님 예쁘니까 한 번만 봐줘~.”라고 얘기하면 학년별로 반응이 다르다. 아이들을 오래 만나다 보니 이제 통계치가 나온다.

“에이~선생님 안 예뻐요. 못생겼어요.”라고 직설적으로 반응하면 중1.

“아 기분 나빠져서 수업 못하겠네. 어이가 없네.”라고 화를 내면 중2.

“와 진짜 예쁘네. 김태희보다 더 예쁘네. 와~”라고 약을 올리면 중3.

“그다음 진도 수업하죠”라고 깔끔히 무시하면 고1.

아이들이 1년 사이에도 참 많이 자란다. 어른들은 그렇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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