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답 행진]

나쁜 놈의 6월

by 그레이스


봄을 멸망시키고 여름을 건설하는 6월.

해마다 6월이 되면 이 시가 생각난다.


나쁜 놈의 6월

지은이 : 정한솔


12개월 중 나쁜 놈은

6월

봄의 마지막 희망

5월을 잔인하게 멸망시키고

여름을 건설하네


별은

울어 빛을 내고

하늘은

비가 그리워 비를 내리고

바람은

봄바람이 그리워 바람이 불게 하네.


멸망이란 말은 들은

봄의 유민들은

봄의 멸망을

한탄하네


빨리 타임머신이 개발되면

3월 1일로

돌아가고 싶네.

봄이

그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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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첫해에 6학년이었던 한솔이가 쓴 시다. 시 쓰기 숙제를 내주었는데 한솔이가 이 시를 써 와서 깜짝 놀랐다. 장난기 많고 어린애로만 보였던 한솔이가 이런 시를 쓰다니! (얼마나 놀랐으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을까) 한솔이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멋진 시를 써 왔다. 나는 아이들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이 생겼고, 이때부터 아이들이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 같다. 제멋대로 행동하고 고집을 피워 힘들게 할 때도 있지만, 아이들이야말로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존재들이다.


아이들의 창의성이 이렇게 멋진 시로 표현될 때도 있지만, 뒷목을 잡게 하는 오답으로 나타날 때도 있다. 동명왕 신화를 공부하고 간단한 쪽지 시험을 볼 때였다. 동명왕이 될 주몽이 금와왕 아들들의 시기를 받아 도망할 때 앞에 강이 가로막고 있어 위기에 빠졌는데, 이때 자라와 물고기들이 나타나 다리를 만들어 주어 주몽이 위기를 넘기게 되었다. 영웅 신화에는 일반적으로 영웅을 도와주는 조력자가 나타나는데, 동명왕 신화에서는 물고기와 자라가 그 역할을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수업을 마친 후 아주 간단한 질문 몇 개로 쪽지 시험으로 보았고, 마지막 질문이 ‘주몽은 무엇과 무엇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나게 되었나요?’ 하는 것이었다. 워낙 쉬운 문제들이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금방 답을 적어 냈다. 그런데 한 아이가 답지를 내지 않고 고민하고 있었다. 마지막 문제를 못 쓰고 있는 것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이 녀석 수업을 들은 거야 안 들은 거야. 아이고 답답해. 모르면 그냥 내라고 했더니 안다고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잠깐을 기다려도 답을 못 쓰길래 그냥 내라고 했더니 “진짜 알아요. 알아요.” 그러면서 세 글자를 적어 냈다.


‘해산물’.


답을 보는 순간 웃음이 터졌다. 강에 사는 생물인 건 기억났는데 순간 명칭이 생각 안 나서 해산물이라고 쓴 것 같았다. 그런데 자라와 물고기가 해산물인가? 바다에 사는 생물은 아니니까 해산물은 아니라고 오답 처리했다. 녀석은 비슷하니까 맞다고 해 달라고 졸라댔다. 나를 웃게 해 준 것은 너무 고맙지만, 정답은 아니라서 아쉽다고 했다. 성격 좋은 그 아이는 헤헤 웃었고, 나는 어쩐 일인지 그 녀석이 대단하게 보였다.


‘서동요’ 수업을 할 때도 기가 막힌 오답을 한 친구가 있었다. ‘서동요의 성격으로 알맞지 않은 것을 고르세요’라는 객관식 문제였고, 정답은 ‘교훈적’이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정답을 적었는데, 한 아이만 오답을 적었길래,

“이 녀석아, 서동요에 무슨 교훈이 있냐?” 그랬더니,

“있는데요, 몰래 만나면 안 된다.”

“뭐뭐?” 나는 놀라고, 아이들은 박장대소했다.

“맞다, 맞다, 몰래 만나면 안 되는데요.”

아이들은 그 아이의 말이 맞다고 깔깔 웃으며, 서동요를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내가 수업을 잘못한 것인지, 서동요의 교훈이 ‘몰래 만나면 안 된다’인 것인지. 말도 안 되는 오답을 해 놓고 의기양양해하던 그 모습이 어이없으면서도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잊지 못할 또 하나의 오답은 ‘딱딱하다’이다. 중1 교과서에 ‘아버지의 유물’이라는 옛날이야기가 있었다. 이 이야기의 주제는 ‘하찮은 물건이라도 잘 사용하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로, 가난한 아버지가 물려준 하찮은 유물을 잘 사용해서 부자가 된 세 아들의 이야기이다. 가난한 아버지는 물려줄 유산이 없어서 큰아들에게는 맷돌을, 둘째 아들에게는 표주박과 대나무 지팡이를, 셋째 아들에게는 장구를 물려주었다. 이 세 아들을 세 갈래 길에서 흩어져 각자의 길을 갔고, 아버지의 유물을 잘 사용해서 모두 부자가 되었다. 수업하는 동안 아버지가 물려준 유물은 귀한 것이 아닌 하찮은 것, 보잘것없는 것이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이렇게 하찮은 물건도 잘 사용하면 유용하게 쓸 수 있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그런데 세 유물의 공통점을 묻는 질문에 한 아이가 쓴 답은 ‘딱딱하다’였다. 채점하면서 눈을 의심했다. ‘이게 뭐지? 딱딱하다? 이게 무슨 뜻이야?’ 맷돌, 표주박, 대나무 지팡이, 장구의 공통점은 ‘딱딱하다’

“아 모두 딱딱한 물건들이네.” 내가 하찮은 물건들이라고 그렇게 강조했건만...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는 이 명품 오답을 한 아이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다들 어른이 되어서 자신의 빛깔과 향기를 뽐내며 살고 있겠지. 너희들은 분명 멋진 어른이 되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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