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

영화: 퍼펙트 데이즈. 빔벤더스 감독. 야쿠쇼 코지 주연.

by 묻는 사람 K

내 오랜 소망은 '단조롭고 지루하게 사는 것'이었다. 내면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타오르거나 너무 차갑게 식어버리기 일쑤였으므로 드러난 삶이라도 그랬으면 했다. 가끔 권태로움을 흉내 냈다. 그러다 보면 삶이 심드렁하게 느껴지기도, 담백하게 산다는 착각도 들었다.

잡히지 않는 걸 잡으려 했고, 때로는 불가능한 걸 알면서도 손을 뻗어 허우적거렸다. 어쩌면 손끝에라도 닿지 않을까, 스치지 않을까 기대했다. 욕심을 버릴 수 없어서 결핍은 더해졌고 욕망을 누르지 못해 허기가 깊어졌다. 체념할 수도 단념할 수도 없는 욕구는 아무 데나 들러붙어 흠집을 냈다.


여름밤, <퍼펙트 데이즈>를 본 이후 며칠째 몇몇 장면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코모레비는 바로 그 순간에만 존재한다."던 히라야마, 그의 비슷한 일상과 정직한 노동은 차라리 종교의식 같았다. 클로즈업된 표정을 넋 놓고 보다가, 순식간에 27년 전의 내게 말을 걸었다.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


ost 때문이었을 것이다. 존재만으로 충분한 민지가 태어났을 때,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신비로운 생명체 옆에 누워 pale blue eyes를 들었다. 영화 '접속'을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카세트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듣고 또 들었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더 간절하게 지루한 삶을 꿈꿨다. 어디로든 사라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뒤늦은 사춘기를 겪는 거라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나 자신을 견딜 수 없었다. 옆에서 꼬물거리는 여리고 물컹한 것을 보며, 한없이 단단해지겠다고 다짐했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민지보다 어렸다.

이후로도 자잘한 파장을 피할 도리는 없었다. 때때로 폭우도 지나갔다. 회복될 수 없을 것 같은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 찰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 쉬고, 걷고, 울고, 웃고, 싸우고, 감동하고, 미워하고, 음악을 듣고, 하늘을 보고, 빛을 만지려고 손을 뻗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너무 변해서 서글펐고 변하지 않아서 아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되어 지금에 이르지 않았느냐고, 이것만으로도 "퍼펙트한 삶"이 아니겠느냐고 124분간 계속 속삭이는 그런 영화, 그런 밤이었다.



* 퍼펙트 데이즈

빔 벤더스 감독, 야쿠쇼 코지 주연. 2023년작 일본, 독일 합작 영화.

한국 개봉 2024년 7월 / 장르: 드라마 / 러닝타임 1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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