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모 레비, 어빈 얄롬, 노회찬, 이승우, 김애란, 황정은, 장국영, 양조위, 구본창, 김섭, 바실리 페트렌코 그리고 올리버 색스. 이들의 공통점은 내가 오랫동안 팬심을 유지하고 있으며 어지간해서는 바뀔 리 없다는 점이다. 이제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아 재평가될 가능성이 낮은 사람들도 있지만, 꾸준히 활동 중인 이들 또한 마찬가지다.
미숙한 마음이지만, 나는 그들을 각자 활동 영역을 벗어난 곳에서는 만나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작가라면 책을 통해서, 배우라면 영화 속에서, 사진과 판화 작품으로, 연주회 지휘하는 모습으로만 보고 싶다. 애초 그들을 향한 내 마음이 연약해서 일수도 있겠다. 비슷한 이유로 자서전, 인터뷰 기사 역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일상 속 인간사야 실망과 회복이 빈번하고, 미워도 사이를 유지할 수 있으며, 웬만한 흠결로는 훼손되지 않는 단단한 연결도 있다. 하지만 일방향이라는 독특한 관계에서는 나름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내가 생활인으로서의 당사자와 그의 작품을 구분하는데 서툰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이후, 과도하거나 불필요한 정보를 차단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도 그중 하나다.
사족이 길었는데 그러니까, <<온 더 무브>>를 구입한 것은 단지 '올리버 색스'라는 저자 때문이었다. 애초 완독을 목표로 하지 않았으므로 몇 년 넘도록 책장 속 올리버 색스 섹션에 꽂아둔 것으로 충분했다. 팬이라도 개인사는 궁금하지 않았다. 그간의 책을 통해 퍼즐 맞추기 하듯 이미지를 상상하는 편이 훨씬 좋았다. 설령 오해더라도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한동안 내 카카오톡 프로필엔 올리버 색스의 에세이 "고맙습니다." 표지를 올려두었다. "내가 무엇보다 강하게 느끼는 감정은 고마움이다. 나는 사랑했고 사랑받았다. 무엇보다 나는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지각 있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 살았다.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이었다"라고 말한 그를 향한 팬심의 표현이면서 아울러 "소심하고 불안 많고, 내성적이고 수동적"인 나를 위로하고 싶어서였다.
홀리듯 손이 닿아 읽었다고 생각했지만, 달라진 바람 때문에 온기가 필요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시월이 다가오면 나는 때 이른 월동 준비를 시작한다, 하여 솔직하고 따뜻하고, 고요하고, 엉뚱하고, 깊이 있는 그의 온기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온 더 무브>>를 읽는 내내 이러니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나 싶었다. 그처럼 솔직하고 좀 더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적어도 이 가을만이라도!
내가 느낀 톰은 더없이 다정한 인간미와 타협 없는 지적 정직성이 하나 된 존재였다. 톰은 그 순간에도 적확하고 신랄했던 반면 나는 자꾸만 본질에서 이탈하고 과장하고 늘어졌다. 톰은 에두를 줄 모르고 속임수를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정공법에는 언제나 일종의 온화함이 스며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95.96쪽)
당시 나는 정신 의학 용어를 아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레리의 상태에 대해 진단을 하고 싶지 않았다. 성장하면서 필요한 사랑과 보살핌과 안정감, 살아가면서 필요한 존중을 그렇게 못 받고 지낸 레리가 이처럼 온정 한 정신으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368쪽)
글쓰기는 잘될 때는 만족감과 희열을 가져다준다. 그 어떤 것에서도 얻지 못할 기쁨이다. 글쓰기는 주제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나를 어딘가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 잡념이나 근심 걱정 다 잊고, 아니 시간의 흐름조차 잊은 채 오로지 글쓰기 행위에 몰입하는 곳으로. 좀처럼 얻기 힘든 그 황홀한 경지에 들어서면 그야말로 쉼 없이 써 내려간다. 그러다 종이가 바닥나면 그제야 깨닫는다. 날이 저물도록, 하루 온종일 멈추지 않고 글을 쓰고 있었음을. (47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