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행운을!!!

김애란의 <비행운>, <달려라,아비>

by 묻는 사람 K

비(非) ‘행운’, 비행 운(雲), 행운(幸運), 행운(行雲)을 입속으로 오물거리며 놀다가, ‘삶은 운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인력으로 되는 일보다는 그렇지 않은 일이 열 배쯤 많다는 걸, 지칠 만큼 알게 되면서, 사소한 일에도 ‘제발’을 주문처럼 외우고, 곧잘 신에게 으름장 놓곤 했다.


큰 굴곡 없다 싶었지만, 삶의 순간순간 도박처럼 아슬아슬한 기대를 걸었다. 누군가를 깊이 알수록, 그에게도 운이란 게 따라줬으면, 간절한 마음 들곤 했다. 사방을 둘러봐도 욕밖에는 나올 게 없는 비루한 삶이라고 말했을 때, ‘아, 젠장 할, 현실은 역시 남루한 거야.’라고 맞받아쳤지만, 그래도 마음으로는 ‘제발, 저이를 한 번만 도와주세요.’ 빌었다.


모두가 비슷비슷하게 운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믿는 쪽이므로, ‘살아 있는 것을 대할 때, 가끔, 아니, 자주 아프다.’ 극적인 반전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만 있는 것이므로,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므로.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힐 것이므로, 시간을 버텨내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으므로, 나도 너도 당신도 모두 그러한 존재들이므로, 삶이 서럽다고 느꼈다.


김애란 글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운’에 기댈 수밖에 없는 이들이다. 착각 속에 살 때, 나는 그들과 다른 부류인 줄 알았다. 미혼모로 팍팍한 세상에 맞서지 않아도(달려라 아비), 조로증으로 놀림의 대상이 되지 않아도(두근두근 내 인생), 대학 졸업 이후 직장을 얻지 못해 마음 졸이며 자책하지 않아도(큐티클 외), 다단계에 빠져 지인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되는(서른) 삶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서둘러 선을 긋고, 그들과 구분했다. 내 삶 또한 언제든지, 얼마든지, 어디로든지 흘러갈 수 있다는 걸 어렴풋하게나마 알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작가의 글이 내 얘기 같고, 당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솔직하고 발랄하며 담백한 화법이, 슬픔을 관통하는 유머가, 지나치게 섬세해서 베일 듯 한 관찰과 묘사가 마음을 어지럽힌다. 그래도, 그래서, 김애란을 신뢰한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완벽하지도 소위 ‘주인공’스럽지 않다. ‘절대 악’과 ‘절대 선’으로 편을 가르지 않는다. 지독하게 악한 사람이 등장하지 않으므로 ‘공분’ 하지 않아도 되고, 연민과 동정만 쥐어짜는 대상이 없으므로 우월감 느낄 필요가 없다. 도덕적 판단자가 되는 피로를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역시 김애란 소설의 장점이지 싶다. 인간은 누구나 특정 상황에서는 유사하게 행동하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아파한다는 일관된 목소리. 그녀의 현실 감각과 균형 감각에 숙연해진다.


“아버지는 자신이 잘못하고도 다른 사람이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하는 진짜 나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도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은, 나쁘면서 불쌍하기까지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달려라, 아비. 11쪽 12쪽)”


“나는 따뜻한 사람이지만, 당신보다 당신의 절망을 경청하고 있는 나의 예의바름을 더 사랑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례한 사람이다. 나는 오만한 사람을 미워하지만 겸손한 사람은 의심하는 사람이다. 나는 모두가 좋아하는 그림 앞에서 내가 그동안 그것들을 ‘그다지’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자신에 대해서는 당신들이 모르는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타인에 대해서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나는 다 알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동의하지 않아도 끄덕이는 사람, 나는 불안한 수다쟁이, 나는 나의 이야기,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사람, 나는 나의 각주들이다.(영원한 화자. 117쪽)”라고 말할 수 있는 김애란 작가가 있다는 건, 위안이고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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