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지나간다.

by 묻는 사람 K

몇 해 전, 수술을 앞둔 아버지와 함께 남산엘 올랐더랬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으나, 이 가을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수시로 엄습했다. 일몰 직전 도착한 우리는 좀 더 전망 좋은 곳을 -그러니까, 주변의 방해를 최소화한 채 일몰과 가을 단풍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 뛰듯이 걸었다. 마음 급한 나는 아버지 등을 밀면서 언덕을 올라갔다. '조금만 힘을 내세요. 이러다 해가 지겠어요.'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는 연인들, 형형색색 여행사 깃발을 따라온 무리, 가족 이름을 불러 대는 여자, 등산복 차림의 남자, 뾰로통해 심술부리는 아이, 자전거를 옆에 세운 채 말없이 휴대폰 카메라를 눌러대는 청년. 그들의 틈 속에서 아버지와 나는 말없이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아, 모든 게 참 빠르구나...." 아버지께서 혼잣말처럼 내뱉으셨다. 팔십 삶이 한순간으로 느껴질 수 있음이 절반의 삶을 산 내게 오롯이 전해졌다.


그날 이후로도, 많은 것이 매서운 속도로 요란스럽게 지나갔다. 이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항상 빨랐으나 언제나 다른 곳만 보고 있었으므로 알아채지 못했던 것뿐이다. 내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으니까, 신경 쓸 필요가 없었던 건지도 모르지.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했던 흐린 날, 잠시 멈췄으나 또다시 비가 쏟아질지 모르는 하늘이라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남산을 올랐다.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뛰듯이 걸었다. '눈 속에 담아둬야지. 금방 사라져 버릴 테니까.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릴 테니까.'


후드둑, 빗방울이 떨어졌다. 큰 나무 밑으로 비를 피해 멈춰 섰다. '이 또한 지나갈 테니까. 겁먹을 것 없어. 어쩌면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갈지도 몰라.' 그렇게 한동안 서서 지나가는 것을, 사라져 버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빠, 정말 모든 게 너무 빨라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당신에게 행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