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다.
며칠 전 아파트 경비 노동자 한 분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절박했고, 두려웠고, 좌절했고, 미안했고, 고마웠고, 억울했던 마지막 몸부림이 몇 장 종이 위에 삐뚤삐뚤한 글씨로 남겨졌다. 누군가의 아들이었으며, 두 딸의 아버지였으며, 동생이었던 한 인간이 순식간에 지구에서 사라졌다.
며칠째 쏟아지는 뉴스를 골라 읽으며, 사라진 사람의 마지막 며칠을 상상했다. 직업인으로서 역할, 가장의 책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의도적이든 자동적이든, 필요하든 그렇지 않든, 그는 '쓸모 있는 사람' 이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누군가 그를 다른 목적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을 짐작이나 했을까.
그래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연히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욕먹어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그 정도는 견딜 수 있는 강한 사람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일상 속에서 이런 사나운 논리로 관계를 이해하거나 설명하거나 합리화하는 경우는 빈번하니까. 아니,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 그게 더 쉬웠을 테니까.
한때, '쓸모 있는 인간'이 되고 싶다는 무서운 꿈을 꾸었던 나라서, 사람에게 '쓸모'라는 단어를 붙일 때 그게 얼마나 엄청난 폭력 될 수 있는지 뒤늦게 깨달아버린 터라서.... 이 죽음을 온전히 슬퍼하지도 못한 채, 부유하는 복잡한 감정을 어쩌지 못하고 있다.
나는, 더디게 회복되는 사람이라서 며칠을 더 앓아야 할 것이다. 이 고통이 선명해지면, 분노와 무력감, 죄책감....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부끄럽고 나약한 나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로소 그때에서야 한 인간이 감당했을 무자비한 폭력에 대해 애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는, 나도 당신도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 노력하지 말자고, 그냥 사람으로만 살자고 말해볼 수 있을 것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