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원 지음. 한겨레 출판. 2025.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버나드쇼의 묘비명이라고 잘못 알려진 그 문장을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뇐다. 최근 일만은 아니니 내 삶의 전반적인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사소하게는 휴일을 기다리며 하고 싶은, 해야 할 목록을 줄줄이 메모해 놓고는 정작 당일엔 갈팡질팡, 허둥지둥, 왔다 갔다 한다. 결국 밤이면, '이럴 줄 알았지' 자조 섞인 말로 잠자리에 든다.
싫은데, 대부분 이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한동안 제대로 책을 읽지 못했다. '않았다'라고 하기엔 정말이지 읽히지 않았다. 근근이 독서모임에서 정해준 책을 읽는 게 전부였다. 입력 값이 없으니, 생각은 정리되지 않았고, 입 밖으로 나오는 말도 수시로 방향을 잃어버렸다. 입력 값을 높이는 쪽 보다, 입을 다무는 쪽을, 만남 자체를 줄이는 쪽을 선택했다. 추운 겨울, 잠깐 반짝이던 봄, 악 소리 나는 여름까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채로 숨만 쉬고 살았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3주에 한번, 한 달에 한 번 있는 두 개의 독서모임이 있다는 거였다. 그중 곳에서 선택된 책이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이었다. 잠들기 전 삼십 분, 한 꼭지 혹은 두 꼭지를 읽고 잠들었다. 나는, 색깔이 강한 사람을 부러워하지만 좋아하는 편이 아니고, 직업군은 이보다 훨씬 더 꺼려한다. 솔직히 색이 강한 집단을 싫어하는 쪽에 가깝다. '기자 집단'만큼 불신하는 검사가 저자라니.... 젠장'
책을 사는 단계에서조차 주저했지만, 숙제하는 마음으로 조금씩 읽었다. 그들의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진 않았지만, 진솔한 글과 소소한 에피소드를 읽다 보면 마음이 녹았다. '올해는 나도 장화를 한 켤레 사야겠어. 바닥은 탄탄하고, 몸체는 가볍고 유연한 것으로' 포스트잇에 메모를 하고는 책을 덮었다. 결국, 무슨 일을 하든, 사람의 문제였던 걸까?
사법 시스템은 인간적이어야 한다고 믿지만, 인간적이기 때문에 위험할 수 있다는 걸 경험했다. 몇몇 악의를 가진 인간이 손쉽게 어지럽힐 수 있고, 감당할 수 없는 권력을 탐한 무능이 어디까지 망가뜨릴 수 있는지를 보았다. 뿌리 깊고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허점을 시스템으로 보완할 수 있을까, 의구심과 두려움은 여전하다. 하지만, 대한은 살았고, 조금씩 다시 나아갈 것이다. 나는 사람의 힘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