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 병원이라니!

치앙마이 방콕 병원

by 묻는 사람 K

한국의 지독한 여름을 겪어서일지도 모르겠지만, 12월의 치앙마이는 에어컨 없이 생활해도 전혀 문제없는 날씨다. 한낮의 강한 볕을 피해 그늘에 있으면 '땀순이'인 나도 그럭저럭 괜찮다.


귀에 물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 쳇 gpt와 남편이 동시에 잔소리를 다. 나 역시 땀을 흘리지 않았던 터라 그냥 나설까 싶었다. 헌데 거울을 보니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게다가 진료 예약과 동시에 불편감이 한결 나아진 것도 같았다.


크리스마스 예배를 마치고, 치앙마이 대학 내 [블루커피]에서 예약된 시간까지 머물렀다. "멀리까지 가서 별 걸 다 하네"라고 남편과 시누가 나누는 카톡을 봤지만, 틀린 말도 아니라서 입을 다물었다.


병원은 생각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 외국인이라 서류 절차를 진행하는데 20-30분가량이 걸렸지만, 깔끔하고 체계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친절했다. 그래서였겠지만, 아버지가 생각났다.


"의사가 뭐라 하드 노? 왜 화를 내나? 뭐라하노?"


노년에 청력이 약해진 아버지는 보청기를 착용해도 소리에 반응을 잘 못하셨다. 아버지를 향한 큰소리에는 호의가 드물었으니, 상대가 화를 낸다고 느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을 터였다.


정기적으로 대학병원 진료를 가실 때마다, 가뜩이나 긴장하셨을 아버지께 되레 잔소리만 했다. '차분하게 말해주세요'라고 해야 할 대상에게는 한마디 하지 못하고 애먼 아버지만 단속하기 바빴다.


태국어는 말할 것도 없고, 영어에도 서툰 나는, 속수무책으로 귀까지 고장 난 채였다. 남편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를 제쳐둔 채, 타인이 주고받는 걸 보는 기분이라니!


아무도 소리 지르지 않았고, 채근하듯 묻지 않았고, 한숨 쉬지 않았다. 심지어 친절했다. 그런데도 나는 아빠가 그러셨던 것처럼아 있었다. 선의와 호의를 가진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는 것조차 나를 주눅 들게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남편은 오늘 같은 날 영양가 있는 걸 먹자고 했다. 게다가 크리스마스니까 조금 값이 나가더라도 근사한 식당을 가자며 구글 지도에 표시한 식당을 하나씩 보여줬다.

여보! 몇 시간 만에 병원비로 5000밧을 썼어!


이제 제법 단골이 된 동네 작은 수끼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치앙마이에 오고 3~4일 지나고부터는 매일 저녁 영화를 본다. 오늘, 남편이 고른 영화는 [더 사일런트 아워] 짜증을 말없이 받아 주더니, 이 한방이 있었나 보다.


성질 하고는!!!!


한 가지 기능만 가질 수 있다면 서슴없이 시력을 꼽았더랬다. 책, 그림, 도심, 야경, 표정, 나무, 바람, 구름.... 소극적이고 내향인인 나는, 취미도 즐거움도 모두 보는 것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아버지 노년의 삶과, 청각이 인지 기능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들을 접하고부터는 무엇도 선뜻 말할 수가 없다. 시간이 지나야 알게 되는 것이, 앞으로도 얼마나 많을까? 당황하거나 쫄지 않으면서 받아들이게 되는, 그런 순간이 오기는 할까?


오늘의 에너지는 충분히 소진했으므로, 흐트러진 생각정리는 내일로 미뤄둬야겠다. 너무 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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