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곯을 일 밥 먹듯 한 시기도 아니었는데, 그때의 나는 아카시아에 집착했다. 유혹적인 향기, 포도송이처럼 몽글몽글 탐스럽게 열려 있는 모습을 외면하기란 쉽지 않았다. 언제부터였는지, 누가 처음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초여름이면 홀리듯 나무를 기어 올라가는 아이들과 나뭇가지를 들고 뒤를 쫓는 어른들로 동네가 시끄러웠다. 물론, 나 역시 기어 올라가는, 쫓기는 아이 중 하나였다.
어른들은 '아무짝에 쓸데없는 나무'가 많아 문제라고 했다. 담임 선생님은 무익한 나무를 과실수로 바꿔 심어야 한다고도 말씀하셨다. 그때의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꽃송이는 먹고, 이파리는 가위바위보로 놀이를 하거나, '좋아한다, 싫어한다' 점을 칠 수도 있었는데, 왜?... 하물며 앙상하게 남은 줄기로는 머리카락을 꼬아서 유행하던 파마도 할 수 있는데, 왜?
민첩한 아이가 나무로 올라가 손에 잡히는 데로 아카시아 송이를 뜯어 던지면 기다리던 아이는 수확물을 한 곳으로 모았다. 지나던 친구가 합류하면 역할을 바꾸기도 했고, 망보던 아이 신호에 도망가고 모이기를 반복했다. 초여름의 하굣길은 각자의 신(발)주머니에 풍성하게 꽃송이를 담아 돌아서는 것으로 끝났다. 우리만의 계절 맞이 의식이었달까.
"숨을 내쉴 때마다 꽃 비린내가 진동한다고, 도대체 얼마나 먹은 거냐"며 야단치시던 엄마도, 매번 혼나면서도 먹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나도 모두 지치지 않고 그 계절을 보냈다. 그때 뜯어먹어 치운 아카시아는 못 해도 스무 그루 이상은 될 것이다. "너 때문에 홍수가 나서 흙모래가 떠내려 갈 거라"는 어머니의 과장된 위협(엄마, 저는 나뭇가지나 뿌리, 기둥은 한 입도 먹지 않았어요.)에도 한번 길들여진 맛을 그때의 나와 친구들은 끊지 못했다.
요즘처럼 흐드러지게 아카시아가 만발할 때면, 날 것의 비릿한 향에 저절로 군침이 돈다. 게다가 오늘처럼 강한 빗줄기가 쏟아부을 때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조급함에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빗줄기가 잦아든 틈을 타 집 뒷산에 올랐다. 손을 뻗어 한 알을 꺾었다. 변함없는 달콤함과 비릿함, 생생한 향기가 입안 가득 번졌다. 아, 곧 여름이 오겠구나.....
여전히 나는, 아카시아 향을 맡으면 자꾸만 배가 고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