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묻는 사람 K

'그러고 싶지 않거나, 알고 싶지 않은 게' 있을 뿐, 이해 못 할 일은 별로 없는 듯하다. 맥락을 들여다보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은 게 대부분이다. 출근길, 아파트 창문을 뚫고 나오는 '쥐 잡듯 아이를 잡는' 여자 음성과 울음 섞인 아이 목소리를 들었다. 그녀에게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로 생각했다. 나는, 단지 그녀의 분노를 이해하고 싶지 않을 뿐이고.


1999년 2월 13일 당시 고3이던 학생이 사라졌다. 1981년생이라 했으니, 올해로 마흔이 되었을 것이다. 서울 시내를 다닐 때는 물론, 운전하고 도시를 벗어날 때면 그녀를 찾는 현수막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대부분 풍경에 묻혀 무심히 지나쳤다. 더러는 '아직도, 돌아오지 못했구나.... '생각했다. 가끔 '어쩌면...' 하다가 남의 일이라고 함부로 생각하는구나 싶어 스스로 꾸짖었다.


그 당시에는 단순 가출이 흔했다니 담당 경찰의 3일 늦은 대응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실종 5년, 그녀 신상 정보를 도용했다 잡힌 커플이나, 간간히 걸려왔다는 허위 제보 기사를 보면서도 '어휴....' 하며 낙심했지만 그럴 수도 있지,라고 넘겼다. 실종 7년 만에 어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아비는 생업을 포기한 채 전단 꾸러미를 들고 전국을 누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서야 섣부르게 누군가를 이해하려던 게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이던가 싶어 졌다.


'이해'한다는 말속에 '관심 없어'라는 의미가 섞어 들어갈 때가 있다. 그러므로 아무 때나, 누구에게나, 무엇에나 쉽게 내뱉어서는 안 됐다. 온전히 이해하고 싶다면, 먼저 각자의 위치에 대해 고민해야 했다. 이를테면, 기다리는 것이 살아남은 아버지의 몫이라면, 돌아오는 것은 그녀의 몫일 테고, 이 실종 사건과 조금이라도 연관된 사람이 당해야 할 찔림과 고통은 그 각자의 몫이며, 기억이 사라지지 않게 헤집는 것은 나의 몫인 것처럼. 이렇게 각자 몫을 나누어 가진 후에야, 조심스럽게 '이해'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되지 않은 이 마음을 하나의 글로 완결 지으려는 지금, 나는 그녀가 영화처럼 돌아올 거로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그녀 실종에 책임이 있거나, 어떤 동기에서든 관여했거나, 죄책감 없이 사건 수사를 방해했거나, 별것 아니겠지 하며 허위 제보를 했거나, 귀찮아서 말하지 않았거나 한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불편하기를 바랄 뿐이다. 자기 몫의 고통을 잊지 말고 감당하길 바란다.


1999년 2월에 발생한 실종사건은 2014년 2월 공소시효가 만료되었다. 그녀 아버지는 여전히 전단을 돌리고, 낡은 현수막을 새것으로 바꿔가고 있을 것이다. 2020년 5월, 여전히 고등학교생인 그녀가 웃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나는 조금 서글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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