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마음은 알겠지만,

by 묻는 사람 K

남편이 존엄사에 관한 소신을 명확히 밝혀 둔 시점이 언제였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의 '엄마'이면서 나의 시어머니께서 며느리 존재를 지운 그때였을까? 장남 목소리에 반응하는 빈도가 줄어든 그 무렵이었을까? 자신이 삶의 주도권을 가질 수 없는 시기가 온다면, 스스로 마무리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맞아, 품위 있게 삶을 마감할 기회를 줘야 해'라고 맞장구치거나, '그렇지'라고 짧게 동의했지만, 내 마음은 쉼 없이 흔들렸다.


이별에 서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긋지긋함도 사람 사이에서 피할 수 없는 거라고 믿는 쪽이니까. 그리고 '형상'이 달라진다고 해서 '본질'까지 변하는 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와 나는 슬픔을 처리하는 방식도 좋은 일을 받아들이는 방법도 많이 다르다. 나는 '좋은 일이 모두 좋은 것만은 아니야..'라는 쪽이라면, 그는 한없이 기뻐하고 뒷일을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슬픔을 충분히 겪고 올라오는 쪽이 나라면, 한없이 냉정 해지는 대신 몸이 앓는 쪽이 그이다.


어머니 병세가 악화될수록 그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꺼렸다. 호두과자 집을 지날 때면, '어, 이거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건데'라고 하거나, 서울 오셨을 때 들렀던 미용실을 지날 때마다 '저분이 우리 엄마 머리를 예쁘게 해 주셨어. 그때가 마지막이었는데... 고마운 분이야'라고 더는 말하지 않는다. 모든 것에 무심해졌고, 시큰둥하다. 가끔 이유 없이 끙끙 앓았고 원인 모를 고열에도 시달렸다.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많은 것에 대해, 삶에 관해, 피할 수 없는 문제들을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삶의 주도권을 행사할 수 없을 때, 품위 있게 마무리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서로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다. 1%의 희망이라도 붙잡고 싶어 하는 내 미련함이, 형상보다는 본질이 중요하다고 믿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남편은 그것이 불안할 테고 그가 듣고 싶어 할 말을 자신 있게 해 줄 수 없어서, 나는 혼자 있을 때면 자꾸만 되묻는다.


"그러니까, 남편!... 당신 마음은 잘 알겠지마는... 나는 좀 더 고민해 볼 게. 당신을 존중해. 그래서 노력할 거야. 남겨진 사람의 뜻에 따라야 된다는 내 마음, 그 사람이 충분히 애도할 수 있는 방식대로 처리되어야 한다는 내 생각, 언젠가는 바뀌게 될지 몰라. 태어나는 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듯 최후의 순간 역시 우리 방식대로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물렁물렁해지면 좋겠어. 우리, 사는 동안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 지금은 그것만 생각해."


5월 21일 누가 언제 정했는지 모르겠으나, 오늘은 부부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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